<일의 기쁨과 슬픔> :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나? 많다. 사실 엄청 많다. 대성통곡도 해본 듯. 사실 이 책의 단편소설 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이미 읽은 적이 있다. 트위터에서 꽤 핫했다. 단편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 어떤 링크로 들어가니까 공짜로 볼 수 있었다. 아마 웹진으로 처음 봤던 것 같다. 그리고 단막극이 나왔다고 해서 또 챙겨봤고. 단막극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 강말금 배우가 나오고 원작을 거의 그대로 옮긴 드라마였다. 지금은 어쩌다보니 백수가 되어서 일의 기쁨과 슬픔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 면접 끝나고 집 돌아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렸는데 책 제목이 눈에 띄더라고.
1. 잘 살겠습니다
주인공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빛나언니가 청첩장을 달라고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빛나언니와 그렇게 친하지 않은데 말이다. 주인공에게 빛나언니는 "나라면 저러지 않을텐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언니이면서도 눈치가 없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듯하다. 일도 잘하지 못하고, 청첩장을 받을 때는 밥을 얻어먹었으면서 줄 때는 말도 없이 회사 책상 위에 그것도 키보드 밑에 냅두고 간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빛나 언니의 빌런짓?에 웃다가도 빛나 언니가 꼭 잘못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아방X가 이기는 세계관이라고. 빛나 언니처럼 기쁨과 슬픔을 솔직하게 느끼는 사람이 더 마음 편히 잘 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두 명 모두 이해가 된다. 주인공은 학창시절부터 열심히 스펙을 쌓아 좋은 회사에 들어왔다. 하지만 신입에게 부서가 정해질 때 이상하게도 핵심 부서는 남자 신입사원들이 들어간다. 게다가 나중에 결혼할 남자친구와 연봉을 공개하자 천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둘은 동기인데도. 물론 남자친구는 핵심 부서에 신입 때부터 있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주인공이 핵심 부서에 못갈 만큼 능력이 없었던 걸까. 주인공이 이렇게 청첩장 모임, 밥값, 축의금에도 재는 사람이 된 것은 다 이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씁쓸하면서도 웃긴 이야기였다. 그리고 진짜 결혼은 못하겠다. 30페이지만 있는데도 기운이 쭉 빠지더라.
2. 일의 기쁨과 슬픔
안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중고 거래 어플인 우동마켓을 운영하는데 거북이알이란 닉네임을 가진 유저가 거의 대부분의 페이지를 차지한다. 우동마켓에서 마치 장사를 하듯이. 결국 대표는 이 거북이알을 어떻게 해결해보라고 안나를 보낸다. 안나는 거북이알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게 되는데..
그 커다란 숫자를 보는 순간, 거북이알은 심장께의 무언가가 발밑의 어딘가로 곤두박질쳐지는 것만 같은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사실 유비카드 회사 직원인데 사장에게 어이없는 일로 찍혀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찍힌 일이라 하면, SNS 중독자인 사장은 본인 SNS로 제일 먼저 공연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일을 너무 잘한 그녀는 홈페이지 팝업창으로 공연 소식을 먼저 전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화가 난 사장은 괜히 그녀가 하는 일마다 꼬투리를 잡고는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 회사를 다닌 사람들은 모두 알지 않을까. 직장 상사는 때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부하 직원이 밉상으로 보여 괴롭힐려고 한다.
이 책의 실로 대단한 부분은 스타트업 회사를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다같이 모여 '스크럼'을 하고, 회사에서는 영어 이름을 쓴다. 하지만 영어 이름을 쓸 뿐, 회사는 전혀 수평적인 구도가 아니다. 이 부분은 드라마 <유니콘>도 이 책을 참고 하지 얺았나 싶을 만큼 닮았다. '스크럼'이란 다같이 서서 간단하게 자신이 맡은 업무의 진행사항을 이야기하는 시간인데, 항상 대표의 일방적인 훈화말씀으로 흘려간다. 우동마켓의 대표와 유비카드의 사장은 꽤 많이 닮았다. 우동마켓에의 헤비유저인 거북이알을 거슬려 한다는 것이 사실 말이 안 된다. 어플을 많이 사용하는 충성고객인데 그저 화면을 내리고 내려도 거북이알만 뜨는 것이 '마음에 안드는' 것이다. 또한 거북이알의 프사가 실제 거북이라 '보기 싫다는' 것이다. 그니까 그냥 사적인 감정으로 안나에게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시키는' 것이다. 꽤 많은 회사의 대표들은 사적인 감정으로 일을 한다. 이런 현실적인 부분이 너무 재미있었다. 사실 스타트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꽤 많은 회사들도 이런 의사결정으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그니까 전혀 근거가 없는 이유로.
굴욕감에 침잠된 채로 밤을 지새웠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여전히 자신이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3.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화자는 과거 회사 동료였던 지유씨를 만나고자 후쿠오카에 간다. 지유씨는 결혼을 했지만, 남편과 사별한 후 일본으로 떠났다. 화자는 지유씨를 좋아했었고, 지유씨 또한 자신에게 관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과 자심감을 가지고 일본으로 향한다.
지유씨의 요청으로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사내 까페에서 잠시 토론했다. 사실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지만 당시 오가는 대화 속에 놓인 공기의 흐림이랄지, 기운이랄지, 그런 것들만큼은 언제든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는 지적 흥분으로 살짝 들떠 있었고 그건 분명 화학적 교감과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사실 관심사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 살짝 들뜨고, 화학적 교감을 느끼는 것은 나도 공감한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여기 화자는 정말 정말 확신한다. 이 책에선 흔치 않은 남성 화자인데 자신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웬만한 여자들과는 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유씨는 지금껏 만난 여자들에 비하면 그렇게 대단한 여자는 아니지만, 대화가 잘 통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유씨는 우리가 대화가 잘 통한 것이 맞냐, 내가 잘 맞춰준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 대화라는 것은 그저 지유씨의 사회성이 좋았던 것은 아닐까?
재미있는 것은 지유씨도 화자에게 관심이 있나 정말 헷갈리게 서술했다는 것이다. 남녀혼탕에 들어가 알몸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유씨는 화자를 거절한다. 그러니가 이 책은 어쩌면 성희롱 교육용으로 딱 좋은 것 같다. 상대방이 아무리 나에게 관심이 있는 듯 보여도 관계를 상대방이 거절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모텔에서 단둘이 술을 마시다가도 여성이 남성을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다고 해도, 성관계 전에 여성이 거절한다면, 그건 거절이다.
남성 화자의 이 말도 안 되는 자기 확신과 그래도 자신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부정이 정말 웃긴다. 결국에 남자의 가장 솔직한 심정은 지유씨와 한 번 자고 싶었던 것이다. 섹스를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 아니라, 관계를 천천히 진전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후쿠오카에 온 이유는 그저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4. 다소 낮음
장우의 냉장고는 4등급으로 다소 낮음이다. 장우는 가난한 밴드 뮤지션이다. 아버지가 싸준 이 냉장고는 자꾸 고장이 난다. 냉장고 앞에서 고장이 나는 고물 냉장고에 대해 자조적 노래를 만들어 기타를 친 영상이 대박이 난다. 그러니까 짧은 영상이 밈이 되어 화제가 되었다. 장우에게는 꽤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 괜찮은 소속사에서 계약을 하자고 하고 음반도 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장우는 자신만의 음악적 신조가 있다. 이 부분이 소속사와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이 때문에 여자친구인 유미와도 헤어지게 된다. 그런데 사실 장우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그 길이 돈이 되어도 마음이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유미와 힘들게 살면서 그 와중에 비싼 강아지를 분양받은 것은 정말 답답했다. 유미가 잘 헤어졌다. 게다가 강아지가 죽자 눈을 뜨고 죽은 것이 마음이 불편해 의사에게 눈을 꼬매달라 한다. 하여튼 사람은 징그럽다. 강아지는 원래 눈을 뜨고 죽는데, 사람이 눈을 뜬 게 보기 불편하다고 꼬매달라 하다니.. 너무 인간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5. 도움의 손길
내집 마련에 성공한 주인공은 도우미 아주머니를 고용하게 된다. 맞벌이 부부인데다가 꽤 까다로운 기준이 있는 주인공은 본인이 집을 다 관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마음에 쏙 뜨는 아주머니를 고용하지만, 어쩐지 고객인 주인공이 오히려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고 살핀다. 고객이 되어도 고용한 사람의 눈치를 보는 전형적인 한국 여성의 모습이다. 아주머니는 주인공에게 애를 안 낳냐고 매일 잔소리를 하고, 심지어 점점 청소도 대충 하는 듯하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공감되었다.
6.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이직을 했는데 "자긴 싹싹해서 거기서도 사랑받고 잘할 거야"라는 말을 듣고 회사를 나온다면 얼마나 기쁠까? 물론 비정규직이라 이직을 응원해준 것이지만, 그래도 아주 좋은 기억일 것이다. 그리고 숫자가 나오면 또 재미있다. 월급이 대략 220만원 정도? 흠. 솔직히 나쁘지 않다. 백한번의 이력서를 쓰고 첫번째 출근을 하는 한 여자의 짧은 단편이다. 재미있게 읽었다. 계속해서 돈을 계산하는 모습이 나랑 비슷했다. 그런데 백한번이나 이력서를 써야지 출근하는 사실이 참 이상하지 않나. 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니.
7. 새벽의 방문자들
개발자들도 최선을 다해 스팸 방지 로직을 만들었고, 스패머도 최선을 다해 글을 올렸고, 여자도 최선을 다해 글을 지웠고, 업주들도 '최선을 다해 모시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쪽과 저쪽이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므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자는 성매매 스팸 광고를 차단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금칙어로만 삭제를 하기에는 어렵다. 결국 개발자들도 최선을 다해 스팸 방지 로직을 만들고, 스패머도 최선을 다해 금칙어를 피해 글을 올렸고, 여자도 최선을 다해 글을 지웠다. 하지만 성매매 업주들도 항상 최선을 다해 모시겠다는 안내문구를 넣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웃음이 터졌다. 결국 모두가 최선을 다해 결국 스팸은 어느정도 항상 살아있다. 이런 일만 한다면 정말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여자는 집에 들어가서 불을 키자마자 도망가는 바퀴벌레를 보며 생각한다. 바퀴벌레 두 마를 잡으며 안 보이는 곳에 숨어있는 바퀴벌레가 성매매 광고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늘 지운 것은 딱 이 두 마리만큼일 거라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여자의 집에 새벽마다 남자들이 방문한다. 초인종만 누르고, 말도 걸지 않고, 전화를 걸어 확인하지도 않고, 두리번두리번 누가 볼까봐 걱정하는 남자들의 표정. 여자는 본인이 사는 오피스텔이 비슷한 동이 하나 더 있어 주소를 헷갈려 찾아온 남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오피스텔로 성매매를 하려온 남자일 것이라고. 그런데 어느 날 이 방문자 중에 아는 얼굴이 있다. 여자와 결혼할 뻔한 남자, 김이었다.
글만 읽었는데도 묘하게 역하다. 여자보다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고 믿는 저 자신만만한 태도. 여자가 김과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대놓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부분만 읽어도 알 수 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를 주변 사람들은 탓하지만, 여자의 선택이 옳았다. 나보다 경제 상황이 좋은 남자이니 여자가 감복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해도 충분히 괴로운데, 나와 결혼할 남자조차 그러고 있다니.. 너무 현실적이라 더 보기 힘들었던 단편이었다.
8. 탐페레 공항
이 말이 너무 공감되었다. 엄청난 도전이고,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를 해낸 느낌인데 다 준비하고 나서 보니 결국 남들이 한번씩 해보는 것에 불과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국인들 너무 열심히 산다. 엄청난 도전, 특별한 이벤트를 해내면서 남들과 비슷하다고 자신은 평범하다고 이 정도 경쟁력으로는 먹고 살지 못한다고 불안해 한다. 적어도 나는 나한테 그러지 않는다. 항상 엄청난 도전을 해냈다고 생각했고, 이만하기도 너무 잘했다고 응원하고자 한다.
'나'는 다큐멘터리 피디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일반 회사에 취업한다. 그러니까 꿈을 포기한 사람이다. 그런데 슬프다기보다는 진심으로 기뻤다. 이 단편에서는 피디라는 직업이 나온다. 방송국 취업을 위해, 다큐메터리 피디가 되기 위해 노력햇던 '니'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회사원과는 다른 직업, 방송이라는 특이한 일터에서 일하지만 말도 안되는 육체노동과 중노동. 사무직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만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떠나다 탐페레 공항을 경유하게 된다. 여기서 한 노인을 만난다. 그와의 대화는 짧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운 기억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그에게 편지가 와 있었다. 답장을 해야지 하던 '나'는 결국 현실에 치여 이런저런 핑계로 답장을 미루다 몇 년이 흘러 버린다. 이제는 답장을 하고 싶어도 혹시 그 노인이 죽었을까봐 걱정이 되어 괴롭다. 그가 꼭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어 핀란드에 다시 오라고 했지만, 그 무엇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서랍에 넣어둔 편지를 다시 꺼내 읽는다. 거기에는 노인이 직어준 자신의 사진이 있는데, 사진 뒤에 시리얼 상자같은 것이 붙여있다.
Do not bend (Photo inside) 구부리지 마시오 (사진이 들어 있음)
혹여나 지구 반대편을 거쳐가는 동안 사진이 구겨질까, 걱정된 노인이 시리얼 박스를 오려 붙여 놓은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댄 눈물이 났다. 이 따듯한 마음이 너무 좋았다. 답장을 하고 싶은 '나'의 마음도 너무 좋았다.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써 잇었다.
여기 실린 소설들은 모두 회사에 다니는 동안 발표한 작품이다.
역시 직접 겪어본 일을 쓰니까 작품이 재미있구나. 현실적이고, 더욱 와닿고. 그러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지금은 전업 작가이신 것 같은데 지금도 글이 써질까? 그런데 고민할 필요가 없이 최근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더라고.
이상하게도 공감이 되었다. 나는 작가도 아닌데. 나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글을 쓰면 조금 나아진다. 또 글을 쓴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쉽게 터놓기 어렵다. 어쩌면 영원히 나에게서 글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해도 글은 계속 써야 할 것 같다. 결국엔 세상 밖으로 소설을 내놓은 작가들이 참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