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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밤바다는 불길해책 후기 2025. 11. 29. 22:14반응형

나 좀 똑똑한 거 같애서 자랑 좀 하고 시작하겠음. 도서관에서 책을 신청할 때면 간혹 신청기준이 빡빡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만화책 금지, 너무 오래된 책 금지. 그러니까, 5년 안에 출간된 책만 가능한 경우가 있거든. 그래서 내가 생각했지. 리커버한 책들을 신청하면 되겠다! 그렇게 신청한 책이 바로 이 책. 조예은 작가의 첫 작품. 조예은 작가만의 특이한 세계관은 그대로인데 확실치 첫 작품의 느낌이 있다. 조예은 작가도 글을 쓸수록 실력이 늘어난 거구나.
"밤바다는 불길해."
이 도시의 공기에는 항상 바다의 기운이 스며 있다. 그 일상에 밴 비릿함이 좋기도 싫기도 했다. 란은 종종 생각햇다. 아주 끈적하고 비린 것이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심지어 생생히 느껴지지만 손에 쥘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면? 아마 순응하는 수밖에 없을 테다. 이 밤의 축축함처럼.- 이 책은 전반적으로 바다의 냄새가 나면서 축축한 느낌의 책이다.
기적을 바라는 것조차 과분하게 느껴지던, 모든 일이 어떤 식으로든 빨리 종결되기만을 바라던 시기였다.
이창은 다시 납작하게 눌려 죽은 개미를 떠올렸다.- 이창이 이런 생각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는데 참 마음 아프다. 죽음이라는 것이 크게 느껴지면서도 너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이 개미를 죽이기는 너무 쉬운 것처럼.
"어째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더 작아진 것 같네요."
"그러게. 계속 작아지다 사리질 것 같아."- 사랑하는 조카가 죽을까봐 걱정하는 삼촌의 말이 너무 씁쓸했다.
없애는 것과 옮기는 것. 없애는 게 아닌 옮기는 것.
기적과 교환.- 고통을 없애는 기적이 아니라 옮기는 것. 이것은 기적이 아니다.
이창은 어깨를 붙잡았을 때 스친 직원의 눈빛을 곱씹었다. 체념과는 거리가 먼, 멈추지 않고 내딛는 자의 눈이었다.
"하지만 몸의 상처와 달리 기억은 사라지지 앟아."
기적이 아니다.
밤바다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둡고 불길했다.
병이란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
찬은 자신의 역할을 학습했고, 내면의 중요한 부분을 포기했다.- 찬과 란. 둘의 이름을 합치면 찬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생각과 반추는 죄책감의 미궁으로 향하는 커다란 문이었다.- 계속 생각하고, 과거의 일을 다시 돌아볼수록 죄책감만 커진다.
살 곳을 구하고 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보기 좋은 편지지를 사서 찬에게 보내는 글을 썼다.- 모든 비극이 그러하듯, 형에게 사과를 하려고 하면, 형에게 편지를 전하고자 하면 꼭 안 좋은 일이 벌어진다.
형은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까? 나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어던 말은 근거가 부족해도 흥미 그 자체만으로 힘을 얻곤 하니까.- 사이비가 판을 치는 근거가 이러하다.
란은 그의 군더더기 없는 의지가 부러웠다.
기적은 놀랍도록 고요하게 찾아왔다.
란은 바다가 아닌 우주를 떠올렸다. 추락이 아닌 유영.
이창은 아무렇게나 울고 싶어졌다.
수많은 발자국이 그곳에 찍혀 있었지만 남아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야기의 시작과 그 끝이 매우 비슷하다. 무언가 사건이 벌어졌으나 아무도 없다. 증거도 없다.
손끝에 무엇인가 닿자, 숨이 크게 터져 나왔다.- 엔딩이 너무 좋았다.
엔딩이 진짜 충격이다. 깜짝 놀랐음. 이거 초판도 좀 찾아보고 싶은데. 조예은 작가가 조금은 다듬었다고 해서, 쌩 초판을 보고 싶네.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작가가 타고나길 작가가 아니라, 돈 때문에 작품을 쓸까 고민했다는 게. 난 그냥 타고난 사람인 줄 알았어. 작가라는 직업에 확신이 있을 줄 알았어. 조예은 작가도 이게 내 길인지 고민했다니 신기하다. "도망쳐온 분야에 너무 깊게 발을 들였다는 생각"을 했다는 게 너무 놀랐다. 조예은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고, 작가의 말을 그렇게 많이 읽었는데 이 책에서 작가의 전혀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니 더욱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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