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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 어둠은 규칙 없이 찾아온다.책 후기 2026. 1. 29. 01:09반응형

빛의 과거 책을 읽는 동안 조금 행복했다. 마음 아프고, 울적해지기도 했는데 눈물이 나지는 않았고, 코끝이 시린 정도? 그런 감정으로 계속 읽었던 것 같다. 1977년에 스무 살이었던 유경이 2017년에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77년도 여자대학교의 기숙사가 배경이다.
그녀는 고독과 가난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받은 모욕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어주었다고 말했다.
스스로의 입맛이 아니라 정보와 평판에 따라 선택을 바꾸었다. 자신은 클래식한 취향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취향 있게 보이기 위해서 트랜드에 민감한 것뿐이었다.
-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정말 깊은 작가인 것 같다고 느끼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취향이라는 게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유행에 따라 바뀌는 사람들이 있다.
"군대의 비극은 섞인다는 것이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그 개별적인 '다름'은 필연적으로 '섞임'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비극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서투름과 욕망의 서사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다름은 개인성의 독립이지만 섞임이 그 종합은 아니기 때문이다.
운동장의 스탠드를 가득 메우고 뙤약별 아래 카드섹션을 하던 애들은 지금 다 어디로 흩어져 스무 살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을까.
- 윤이형 작가의 <붕대 감기>라는 소설에서 교련 시간에 운동장에서 여학생들이 붕대를 감는 수업을 했다는 것은 본 적이 있는데, 카드섹션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나는 70년대에 학교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학교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단체 활동을 시키고 튀는 아이들을 집어내곤 한다. 그렇게 튀지 않고, 같이 움직여야 했던 아이들이 다 어딘가로 흩어졌다는 구절이 인상깊었다.
마음이 부드러워서 거절을 못 한답니다.
- 패티 김의 <장미와 빤따롱>의 가사이다.
결론은 한 가지, 여자를 대할 때 남자에게는 영혼이 없다.
새벽 청소를 하다 보면 평소에 못 보던 것을 보기도 했다. 함박눈이 그친 뒤에야 발자국이 드러나는 것처럼 어떤 비밀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실체가 드러나기도 하니까.
자기가 알던 것과 다른 차원의 세상이 암흑 속에서 정의의 동력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결정적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일단 기숙사에서 나와야만 혼자의 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혼자라는 건 어떤 공간을 혼자 차지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뜻하는 거였다.
- 나는 출퇴근길이 조금 걸리는 회사에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았는데, 위와 같은 이유였다. 대중교통을 타고 있을 때는 혼자의 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회사나 집에는 항상 누군가와 같이 있으니까, 혼자서 퇴근길에 가끔 한 정거장을 더 걸어가는 것도 좋았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내 앞의 문을 열지 못하고 번번이 과거의 나로 굴러떨어지곤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세계의 부당한 규율에 복종했던 미성년 그대로였다.
- 스무 살이란 성인이지만, 아직은 미숙하고, 자유로운 것 같지만, 세상은 여전히 억압이 많다.
다수에 끼지 않는 것이 열등함을 의미하는 단체 생활 분위기에서, 소수의 개인은 일방적인 평가와 그것의 부산물인 오해의 대상이었다.
약자는 위로받기보다 차별이 없는 존중을 원한다. 결점이 있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특별한 배려를 받는 게 아니라, 다수와는 다른 조건을 가졌을 뿐 동등한 존재로서의 권리를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신기하네요. 제가 새로운 눈으로 처음 본 사람이 김유경 씨예요."
- 안경을 쓰던 이동휘가 렌즈를 끼고 처음 보았다고 한 말이다.
나의 세계가 넓어질수록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가령 출신지 같은 것이 나를 규정하는 조건이 되었다.
- 20대가 되기 전까지는 어쩌면 잘 모르는 체 안위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여자애라는 것, 출신지 같은 것으로 사람을 규정하고는 한다. 예를 들면, 서울보다 높은 곳에서 온 사람조차 지방에 내려간다라는 표현을 들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고향에 가기 위해 표를 사려 온 사람들에게 줄을 서라고 윽박지르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직원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행패를 다들 받아들인다. 그런 장면들이 인상깊었다. 무엇보다 유경은 그러한 폭력성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아이였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수긍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들이 듣는 데에서는 더욱 주눅이 들었으므로 모두가 편집실을 나가는 저녁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공중전화도 곤란했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누가 지나가기만 해도 갑자기 말문이 닫혔다.
- 진짜 너무너무 공감되어서 미치는 줄.. 물론 유경과 나의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전화가 힘든 점이 너무 공감되었다. 유경이라는 캐릭터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녀에게 거짓말을 해줄 생각을 하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거짓말과 비밀이 우리를 더욱 밀착시켜주는 것 같았다.
회피야말로 가장 비겁한 악이다. 애매함과 유보와 방관은 전 세계의 소통에 폐를 끼친다.
- 책을 읽다보면 중반부쯤에 그녀가 누구인지 밝혀진다. 대학 동창이자 소설가가 된 동창은 기숙사 생활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 그런데 거기에는 지나친 자기합리화와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한 동창들에 대한 험담이 가득하다. 특히 주인공인 유경을 향해서는 위와 같이 비난을 했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회피를 자주 하는 사람으로서 찔리기도 하면서 웃긴 것 같애. 기억하고 살아야 겠다. 가장 비겁한 악이고, 전 세계의 소통에 폐를 끼치지 않고자 노력해야 겠다.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 같은 즉물적인 속담이 바로 자신에게 닥쳐올 연애사의 은유일 거라고 생각하는 그런 공주들. 그들은 미소년이라는 귀중품의 섬세한 포장을 풀 자격이 없다. 차라리 무책임한 박력을 과시하며 노골적으로 따라붙는 거리 헌팅 같은 데에서 마지못한 듯 낚이는 게 더 어울린다.
- 유경이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주눅이 들어 최대한 숨어서 지내는데 그게 남들 눈에는 자신을 공주라 생각하고, 관심을 받기 위해 그런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 유경이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미소년이라는 귀중품을 가질 자격은 없단다. 아 이것도 너무 웃겼다. 아.. 나도 유경이라 비슷한데. 그렇구나.
언니 친구들만 봐도 남자를 일찍 만나 잘된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보다 여자들은, 게으르고 무능하고 겉멋과 헛바람이 든 남자들을 멱여 살릴 값싸고 힘들고 모욕적인 일자리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주인공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설정된 악역 중 하나가 나라는 데에 마음이 상한 것 또한 아니었다. 그저 내 청춘의 무위한 열기와 어리석음에 염증이 들었다.
- 나는 그녀의 소설을 보면서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고, 화가 났는데 유경은 달랐다.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을 창피해 했다. 오해를 받은 것도 있지만, 어느정도는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청춘은 원래 무위하고 어리석은 거 아닌가.
세상은 내가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의 세계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세속적이었다. 귀족에게는 그들만의 가계도가 있다. 그리고 진짜 공주들은 결코 어리석은 비련에 빠지지 않는다.
나의 결혼은 길거리 헌팅과 비슷하게 절차를 무시한 타인의 행동력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그때의 나로서는 상대의 결정을 뒤집을 만한 자신감과 대안이 없다는 게 내 결정인 셈이었다.
- 하.. 진짜 결혼도 안 했는데 너무 공감된다. 정말 내 인생을 내가 선택하고 싶은데 자꾸 타인의 결정을 뒤집을 만한 자신감과 대안이 없어서 이렇게 저렇게 끌려다닌다. 문제는 그또한 내 선택이라는 것이다. 근데 정말 쉽지않음.
내가 늘 남에게 맞추려고 하는 것은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라거나 우월감에 취한 게 아니라 단지 남에게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안에는 우연히 들어온 바람으로 가득 채워졌다가 그것이 빠져나가 텅 비워지곤 하는 허공 같은 게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또한 나의 선택이 아닌 것은 아니다. 김희진이 쓴 대로 회피도 선택일 뿐 아니라 세계의 소통에 폐를 끼치는 악이 될 수 있다.
근시 안경을 벗었다 썼다 했더니 자본주의와 청춘이 교차해 보인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 이 문장이 재미있었다. 유경이 덕수궁 앞 밤거리에서 플라자 호텔의 불 켜진 창을 보면 생각한 문장이다.
왠지 모르지만 인생이 커다란 감옥 같았고 거기에는 미래라고 이름 붙일 만한 출구도 없는 듯했다.
나는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난 것일까, 오로지 내게 주어진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과 성적을 올리는 것, 두 가지에만 의미를 두던 고등학교 시절 훈육의 틀과 그리고 내가 동의할 수 없었던 세상의 모범생이라는 모순된 자리.
- 나도 남 보기에는 모범생인 것처럼 살았다. 하지만 학교란 공간에서 최대한 튀지 않게 살았던 시간들, 가끔씩 떠오르는 수치스러운 기억들은 생각보다 오래 괴롭힌다.
훈육과 세뇌에는 탈출구가 없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조직을 실망시키는 일은 나의 소심함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못하겠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 또한 방어와 허세로 점철된 나의 생존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 나는 진정한 회피형들은 도망가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관두겠다고 말하는 것도,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도망가고, 관두는 사람들이 용기 있다고 생각한다.
이동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고는 내 팔을 잡아 일으키더니 김희진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그대로 자리를 떴다. 그는 계단을 다 내려온 뒤에야 갑자기 어색해진 얼굴로 잡고 있던 내 팔을 슬그머니 놓았다.
- 이 소설 로맨스도 재미있다.
남들 모두 심각하게 매달리는 일에 무심한 방관자로 지내는 것 못지않게 그 심각한 상황이 자신의 몫이 되었을 때 뜻밖에도 흔쾌하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오현수의 산뜻한 면이었다.
그녀는 깨어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 뒤 깨어난 사람은 누구나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을 회피한다면 언제까지나 주인된 세상에 살지 못하고 남의 세상에 억지로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자리에 있는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박수 소리를 내지 못하게 어정쩡하게 두 손바닥을 맞대고 있던 내가 더욱 무력한 방관자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거의 동시에 최성옥도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눈이 마주치자 전에는 거의 본 적 없는 정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웬일인지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심정이었다.
젊고 희로애락의 선명하고 새로 시작하는 일도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인생이 더 나았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욕망이나 가능성의 크기에 따라 다른 계량 도구를 들고 있었을 뿐 살아오는 동안 지녔던 고독과 가난의 수치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일생을 그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해도 나에게만 유독 빛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할 만큼 내 인생이 나빳던 것도 아니다.
아침에 볕이 들었던 자리가 저녁이 되면 싸늘해지듯 빛은 자리를 옮겨 다니는데 어둠은 규칙 없이 찾아온다.
나를 지금의 인생으로 데려다 놓은 것은 꿈이 아니었다. 시간 속에 스몄던 지속되지 않는 사솟한 인연들, 그리고 삶이라는 기나긴 책무를 수행하도록 길들여진 수긍이라는 재능이었다.
세상의 부지리한 통계 중 하나에 기여했다며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 모두 부조리한 통계에 속하고 말았다는 그녀의 말이 나는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비관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나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므로 심신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져든다.
망각도 회피의 한 방식이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시는지? 끝난 소설은 무조건 해피엔드이다.
- 작가의 말도 이렇게 멋있게 쓰나..
인간은 자기연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과거를 돌아보면 항상 나는 피해자였던 것 같고, 사람들한테 오해만 받은 것 같다. 그러나 과거의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와 다를 것이다. 오해를 받지 않고 살기 자체가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70년대의 폭력성은 보기 힘들었다. 여기에는 지방에서 상경한 여자아이가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이 벌어지고 읽기 쉽지는 않았다. 기숙사에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그러지 않은 사람에게도 가혹한 미래가 펼쳐졌다. 그래서 마음이 자주 아팠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인생들을 나빴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빛이 더 들었으면서 좋았을 텐데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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