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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_구병모 장편소설책 후기 2024. 5. 11. 18:45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는 재미있는 책이 참 많다. 이런 스타일의 표지에서 내가 읽은 책은 <82년생 김지영>, <보건교사 안은영>, <해가 지는 곳으로>, <딸에 대하여>가 있다. 여기에 오늘 <네 이웃의 식탁>이 추가되었다. 요즘 도서관에 다니는데, 책 대출 기간이 2주라서 2주에 한 권씩만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올해 벌써 책 8권 읽었는데, 2주에 한 권이면 1년에 몇 권이야. 어쨌든 읽고 싶은 책 힘들게 사거나, 이북으로 사 읽지 말고, 도서관을 애용해야겠다. 세상에 나는 도서관 가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들었다. 용기가 너무 필요했어. 사람들 만나는 게 불편해서. 하지만 요즘은 사는 게 너무 재미없어서 내가 나름 일을 억지로 만드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또 별거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게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다. 성격이 또 바뀌는 중인 것 같다. 좋은 거라고 생각해.
<네 이웃의 식탁은> '네'가 '너'를 뜻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네 가족'을 의미하는 거였다. 구병모 작가님 책을 한 권도 안 읽어서 골라봤다. 제목만 보고 요리하고 음식 차리는 이야기인 줄 알고 흥미는 없지만 한 번 읽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골라 왔는데 예상과 다른 이야기였다. 돌봄노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요즘 내가 고르는 책마다 페미니즘 책이다. 절대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붕대 감기>부터 자꾸 책만 읽는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 책도 나는 결혼도 안 했고, 남편도 없고, 애도 안 낳았는데 내가 왜 이런 걸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작가가 돌려까기도 대놓고 까기도 너무 잘해서 진짜 소리내서 웃음이 몇 번 나왔다. 유부남이 다른 유부녀에게 껄떡댈 때는 구역질이 조금 나기는 했다.
"웃음,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웠겠지. 표정에는 애매모호한 고까움 대신 세삼한 구석까지 신경 써 준 홍단희를 향한 진심 어린 고마움까지 담겨 있었겠지."
이런 감정표현을 정말 세삼하게 잘썼다. 전혀 고맙지 않지만, 사회생활을 위해 억지로 짓는 웃음.. 뭔지 알지.. 나도 이걸 너무 못해서 고민인데. 사실 별로 고민하지는 않아. 어쩔 수 없지 하고 넘겨. 요즘 MZ친구들이 이런 거짓된 표정을 정말 잘 못 짓는 거 같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가 감당해야지 뭐 어쩌겠어.
사람의 추잡한 내면을 콕콕 찌르는 글들이 너무 많다. 아이를 낳고 기른 여자들은 이 책을 읽기가 많이 고통스러울 것 같다. 나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하고 상관 없는 일들이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읽을만 했다. 결혼하기 전에 읽으면 좋을 책 같다. 하지만 결혼 한 후라면 보기 힘들지 않을까. <벌새>나 <세자매>라는 영화처럼 그냥 다 이혼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구병모 작가는 조금 특이하게 글을 쓰는 것 같다. 뭐라고 할까. 그러니까 사족이 너무 많다. 마치 내 블로그 글처럼. 그냥 주인공이 그래서 무엇을 했다. 이렇게 빨리 말하면 좋겠는데 그 사이에 이런 저런 말이 엄청 길다. 2페이지 정도는 지나가야지, 그래서 주인공이 뭘 했는지 알 수 있다. 특이한 문체인 것 같다. 사람이 생각을 하다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뻗어 나가지 않는가. 그런 식으로 글을 쓴다.
난 정말 아이를 못 낳을 것 같다. 이런 책 안 읽고, 이런 저런 생각 안하고 그냥 낳아버려야 되는데. 생각이 많은 것도 문제인데, 이런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버렸다. 아이도 안 낳았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왜 이렇게 공감이 갈까..
이런 일을 겪고도 이혼하지 않는 사람만 결혼을 하는 거겠지. 난 저게 어떻게 웃어 넘길 일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라면 이혼했을 듯.. 저런 일을 겪고도 아이가 생겼다고 그냥 흐지부지 넘기다니. 저런 걸 그냥 흐지부지 넘기는 사람들만 아이를 낳는 걸까. 나라면 아이를 낳지도 않고, 바로 이혼했다.
전체적으로 인류애가 떨어지는 책이었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 아직 나도 안 그런 사람을 만나보지는 못했는데. 결론적으로는 결혼을 하기 전에 읽어서 다행인 책이었다.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또한 내 주변의 많은 여자친구들이 결혼을 해서 이와 같은 길을 걸을 테고 나는 그것을 지켜봐야 하니. 앞으로의 인생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책이라말로 진정한 디스토피아 소설이지 않나. 공동육아와 돌봄노동의 추악한 민낯을 보게 되었다. 게다가 아이를 셋이상 낳겠다는 자필 서약서를 써야지 들어갈 수 있는 공동주택이라니. 국회의원이 읽으면 안 될 책이다. 책의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너무 좋다고 이러한 공동주택을 만들어 버릴 것 같다. 충분히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서 더욱 무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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