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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몫>에 대하여
    책 후기 2024. 4. 28. 22:40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 <몫>을 읽었다. 다들 많이 울은 기억이 있고, 책 내용은 거의 까먹었다. 다 빌려 읽었던 것 같은데, <내게 무해한 사람>은 빌려 읽다가 너무 좋아서 바로 구매를 했다. 왜냐면, 책의 첫 단편소설인 <그 여름>이 너무 좋았거든. 그런데 문제는 <몫>을 분명히 읽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다. 트위터에서 아주 핫했거든. 어떠한 이유로 사람들이 추천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그 수업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시멘트에 밴 습기가 오래도록 머물던 지하 강의실의 서늘한 냄새, 천원짜리 무선 스프링 노트 위에 까만 플러스펜으로 글자를 쓸 때의 느낌, 그녀의 낮은 목소리가 작은 강의실에 퍼져나가던 울림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대학 시절 수업을 듣던 기억이 난다. 저 감각이 무엇인지 다 잘 알 것 같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나도 글을 읽고 같이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는 수업이 가장 좋았다. 나는 별 뜻 없이 지나간 문장들이 다른 사람들의 관점으로 해석될 때, 머릿속에 불이 켜지는 순간이 나도 있었다. 알고 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말들이 언어화될 때 나도 행복을 느꼈다. 대학 공부가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경험들 덕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마침 이촌과 용산 어딘가에서 버스를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책을 처음 펼치고 읽고 있는데, 배경이 용산이라서 신기한 경험을 했었다. 이제 막 펼친 책이 좋아지던 순간이었다.

    "오락실 주인이 돈을 쥐여주면서 이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그녀는 '죽지 않고' 게임을 이어나갔다. '나는 홀로 몰두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잘했다. 몰두하면 시간이 가고, 시간이 가면 그곳으로부터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을리라는 걸 알았으니까''라고 그녀는 썼다."

     

    무언가에 몰두해서 그저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기다렸던 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학교에서 보낸 많은 시간들이 괴로웠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으니, 수업 내용은 하나도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법은 대학에 가고 나서 배웠다. 그때는 공부도 즐거웠다. 하지만 초중고는 거의 많은 수업 시간을 공상을 하며 보냈다.


    "그녀는 장소에 대해 한참이나 묘사하고 나서 '나는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라고 썼다. 그 문장은 같은 에세이 안에서 여러 번 반복되었다."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한 비참한 순간에 대해 기록하고는 바로 다음 단락에서 슈퍼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스크류바를 먹는 장면을 적는 식이었다. 본인이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그런 식의 구성이 여러 번 반복되었는데, 그게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이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내 말을 끊었을 때, 그리고 내 발언을 평가절하했을 때 약간 무안했을 뿐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 말을 끊고, 내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상황이 내게는 익숙했다."
    - 여성들에게 너무 익숙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를 막고 사과를 받고 나서야 이것이 잘못된 상황임을 아는 것이 씁쓸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길을 걸으면서도, 잠들기 전에도 혼자 울었다."

    배경이 용산인 이유가 있었구나. 용산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요즘 책에서 자주 만난다. <소년이 온다>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같은 시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책상에 앉아서 논문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이해했다. 터놓고 얘기하면서 내가 괴로웠다, 내가 상처 입었다, 라고 말할 자격조차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렇지만 상처받았다는 사실은 사실 그대로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비어버런 건물들, 비어버린 상가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궁금한 건 오로지 그것뿐이었다고,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 문장을 반복해서 썼다."

    - 그녀가 "나는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라는 문장을 반복해서 쓴 것처럼 말이지.


    "누군가가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날것 그대로 맗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덜 외로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그럴 수 없었던, 그러지 않았던 내 비겁함을 동시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감이 가면서 또 창피해지는 글이었다. 나도 날것 그대로 내 감정과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피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생각은 날것 그대로 깊어지는데, 행동은 하지 않으니 마음만 답답해지곤 한다.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아니, 무너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안간힘을 쓸 때,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 울어서는 안 된다고 참으며 집으로 걸어갈 때에도, 나는 어딘가에 있을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아주 희미한 빛으로라도 그녀가 앞장서 가준다면, 따라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능력이 좋은 여성들이 사라져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또한 여성들이 일하며 겪는 캄캄한 기분이 무엇인지 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정표가 있으면 좋겠다고,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은 나도 자주 든다. 하지만 길은 내가 걷는 것이고, 내가 방향을 정해야 한다. 결국엔 나의 몫이다.

    <몫>

    "당신은 정윤을 그녀의 글을 통해 먼저 알았다. 1996년 가을, 당신은 도서관 앞에 쌓인 교지를 접어들었다가 한참을 푹 빠져 읽게 되었다. 여러 글들 중에서도 당신의 마음을 잡아끈 건 사학과생 정윤의 글이었다. 당신은 그 글을 몇 번이나 읽었다."

    앞의 단편소설도 그렇고, 주인공이 자꾸 누군가의 글을 읽네. 그 글이 그렇게 좋다는데 나도 읽어보고 싶다. 궁금해진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내겐 최은영 작가의 <몫>이라는 소설이 그랬다. 그리고 생각해보자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도 그랬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 한 구석에서 무언가 깨졌고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당신은 첫 문장을 쓰고 머뭇거리다 두번째 문장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나니 당신이 그곳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신은 그곳을 떠나지 못했으니까. 포기할 수가 없던 부분이 있었으니까."

    이런 문장이 참 좋다. 나도 어느 곳에 들어가면, 금방 그곳을 좋아해버리고는 한다. 자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남들보다 제일 늦게 나간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한 번 둘러다 보고 나가면 좋기도 하고 어딘가 슬프기도 한다. 그래서 이 문장도 좋기도 하면서 슬펐다. 거의 나는 짝사랑만 해서.

    "그때의 당신은 차마 질투조차 하지 못한 채로, 영원히 희영과 같은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을 느꼈다."

     

    "정윤은 자기 감정을 철저하게 숨기지 못했다. 희영에 대한 호감, 그녀가 쓴 글에 대한 애정, 희영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희영과 함께할 때의 기쁨 같은 것들을 제대로 감추지 못해서 당신을 외롭게 했다. 정윤은 공평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기에 그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당신 눈에 보였으므로, 당신은 언제나 그런 공기를 읽는 사람이었으므로, 당신은 느낄 수 있었다."

    김금희 작가의 <체스의 모든 것>이 생각나는 구절이었다. 세 사람이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데, 둘이 유독 친하고 좋아하는 것이 보일 때의 그 외로움을 너무 잘 표현했다. <체스의 모든 것>에서도 화자는 이렇게 소외된 캐릭터였다. 내가 좋아하는 단편소설과 많이 닮았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기 대문에 더 중요한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그 주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찬반이 반으로 갈렸지만, 반대쪽 목소리에 더 힘이 실려 있다고 당신은 생각했다."

    희영이 성희롱 사건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반대의 의견이 크게 일어났다. 누구는 더 중요한 주제를 다루자고 한다.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에는 유독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사건을 축소하려고 한다.

    "이건 여성 문제가 아니다, 더 큰 억압의 문제다, 라는 식의 논리는 언제나 강했고 다수를 설복할 수 있었다."

    슬픈 방법이다.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여성 문제를 여성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단편 소설에서는 인물들이 계속해서 슬픈 선택을 한다.

    "당신은 아직도 그날 밤을 기억한다. 희영이 써온 긴 글을 처음 읽고 받았던 충격을.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아 차갑게 언 발의 감각을 느끼며 그녀의 글을 읽던, 스물에서 스물하나가 되어가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그 글을 읽지 못했는데, 그 공간에 있지도 않았는데 이 문장을 읽는 동안은 그날 밤을 알 것만 같았다. 어쩌면 정말 엄청난 경험은 아니겠지만, 그 날을 겪은 해진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 기억을 안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나도 글을 읽고 어떠한 충격과 마음의 풍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최은영 작가의 <몫>을 읽고 그러했다.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깊이 공감했고, 상처의 조건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

    슬프게도 타인의 상처에 대해 깊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삶에서는 도리어 해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나서 당신은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쓸 줄 모르는 당신만 남아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날이 길었다."

    나는 이 말이 이상하게도 많이 공감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진짜 재능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그저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남는다.

    "그때 느꼇던 실망감을 당신은 희미하게 떠올렸다. 왜 용욱이었을까. 둘 중 누군가 공부를 더 해야 한다면 그건 정윤이었다."

    능력이 좋은 여성이 남성과 결혼을 하고 그를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또한 용욱은 앞에서 여성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 실망감과 배신감까지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붕대 감기>를 최근에 읽어서 더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었다.

    "모두가 느끼고 있었던 희영의 재능에 대해서 희영 자신은 한 번도 확신한 적이 없었다. 분명한 논리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켜가던 희영의 강한 얼굴 뒤로 자신은 글을 쓸 자격도 재주도 없다는 괴로움이 자리하고 있는 줄 그때의 당신은 알지 못했다."

    "당신은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깨어 분노에 휩싸였다. 분노는 배출될 수 없는 독처럼 하루하루 당신 몸에 쌓여갔다. 당신은 당신의 분노가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하고, 그저 당신 자신의 행복을 깨뜨리고 있다는 생각에 슬픔을 느꼈다. 가까운 사람들을 대할 대, 심지어 당신 자신을 대할 때 당신은 예전보다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됐다."
    - 페미니즘을 처음 알게 된 여성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마음이, 당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 붙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그때 알았다."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차라리 이런 일을 몰랐던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이제 세상은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고. 당신은 희영처럼 강한 사람이 아니어서, 화가 나서, 그러나 무력해서 속이 부식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희영은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잊을 수 없는 장면."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편집부원들은 수많은 집회를 참여했다. 운동권이라고 하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여성혐오적인 구호를 말했다. 그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해진과 희영밖에 없었다. 그 외로움을, 여성혐오를 즐기는 이들을 나도 흔하게 마주한다.

    "집에 돌아와 사진이 담긴 유인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마음의 깊은 바닥에 금이 간 느낌이었다고. 그날의 일을 복기하며그 가을을 지나왔다고 했다."

    "언제나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당신이었지만, 당신은 졸업반이 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 항상 그만두고 싶어하는 사람이 더 오래 그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 글을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글을 읽은 해진은 결국, 글쓰기에 행복을 느끼고 그것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글쓰기를 택한다. 많이 공감되는 문장이었다. 글이란 쓰면 쓸수록 결국 나 자신이 드러나서 괴롭고,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또 그러해서 멈출 수 없는 것 같다.

    희영은 정윤을 피하기 시작했다. "나 정윤 언니 미워하는 거 아니야, 많이 좋아해, 그런데도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네가 좀 이해해줘" 라고 말하면서. 미워하지도 않고, 좋아하는데도 피하게 되는 마음은 뭘까. 무슨 마음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사실 정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모습이 어색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대책 없이 벅차기도 해서, 당신은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종종거렸다."
    "그때 희영이 얼마나 행복해 보였는지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팔을 휘휘 돌리면서 허공에 큰 원을 그렸다."
    - 이상하게도 희영의 모습이 눈에 너무나도 잘 그려졌다. 내가 대책 없이 벅차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문장들이었다.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나도 그러하지 않을까. 나는 요즘 읽고 쓰는 일만 하고 있는데. 아니, 나는 애초에 부채감조차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정의롭다는 생각조차 안하는 것 같다. 내가 옳다고 생각되지 않아 오히려 괴롭다. 나 하나의 문제가 너무 커서 다른 문제들에 마음을 쓰고 있지 못하고 있다.

    "가끔씩 언니들의 마음이 너무 가깝게 다가와서 내가 언니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정윤 언니의 말을 생각해."

    - 해진이 그러했잖아.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마음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잖아. 그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마냥 오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붙을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그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외로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

    "졸업하기 직전에, 저기 저 연극부 건물 앞에서 희영이를 본 적이 있었어. 마주보고 걸어와서 서로 피할 새도 없이. 좁은 길이었잖아, 저기가."
    - 정윤이 연극부 건물을 기억하는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문장들이 과거를 서술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는 씁쓸할 것을 알아버려서 마음이 아팠다. 때문에 마지막 장을 읽을 때는 눈물이 났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거의 과거의 인연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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