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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여행자를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북> : 한국에서 살아남기책 후기 2025. 3. 20. 15:09반응형
책 형식이 특이하고 재미있다. 요즘 도서관에서 소설만 연속으로 빌려와서 읽다보니, 새로운 책을 읽고 싶다 생각하던 무렵 <우주 여행자를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북>을 읽게 되었다. 역시 난 운이 좋다니까. 책에 있어서는 거의 실패가 없다! (사실 바로 전에 읽은 책은 빌리고 나서 조금 후회했다..ㅠ)
'발코니'라는 독립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다. 작은 출판사인데 대부분 사회 문제에 대해서 다루는 듯하다. 특이한 책 형식의 독립출판사이니 기억해 두고 싶다.
독립출판사 발코니
경계에 서서 가장 먼저 우주를 맞이하는 곳, 발코니입니다.
balconybook.com
다시 책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은 가이드북이다. 그것도 한국인이나, 외국인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외계인, 우주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가이드북이다.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을 지켜야 하는지 알려주는 가이드북 형식을 빌려,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돌려 까는 책이다. 제목만 보고는 SF소설인가, 무슨 책인지 예상을 못했는데 책을 펼치자마자 매력을 느꼈다. 도서관에서 실물 책을 보니 너무 얇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진짜 가이드북처럼 간결하다. 90페이지 정도밖에 안 되니 후루룩 읽기도 좋다. 책도 가벼워서 들고 다니며 읽기도 좋았다.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원활한 지구 생활을 위해, 대중교통 및 공공장소에서 가이드북을 읽을 경우에는 북자켓을 제거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이지? 하고 책을 다시 꼼꼼히 살피니 바로 위의 표지가 북자켓이었다. 북자켓을 제거하면,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하얀 겉표지만 남는다. 하긴, 사회문제를 다루는 책이니 차별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니까 한국 사회에서는 북자켓을 제거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우리 나라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표지를 들고 다니기 위험한 나라이니까. (치안은 1위라지만!)
왜냐면 책의 뒷표지는 이렇게 생겼기 때문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다. 독립 출판사라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북자켓을 끼고 다니는 것이 더 좋겠지만, 배려가 돋보이는 안내였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책을 안 읽어서 이런 책을 들고 다녀도 아무도 무슨 책인지 모를 것 같다. 그래도 독자를 생각해주는 출판사임에는 틀림 없다. 디자인부터 안내 문구까지 정말 가이드북 같아 재미있었다. 요즘은 특이한 책이 일고 싶어지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재미있던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인권이가 나발이고 '나만 아니면 돼'같은 도박꾼 정신과 반대되면 일단 욕부터 하고 보는 편이다.
-> 보통의 한국인들의 전반적인 마인드가 이럴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혐오에 동의하는 것이다.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사회 구성원 전체가 행복할 것 같은 제도나 정책을 보면 "아니 여기가 북한이야 공산당이야"라는 한마디만 덧붙이면 된다. 그럼 주변에 있던 보통의 한국인들이 당신에게 엄지를 들어 올리며 추켜세워 줄 것이다.
장애인 인권 운동 단체는 늘 시끄럽다고 혐오하고, 장애인을 '위해' 비장애인이 희생해야 하는 게 짜증 난다고 불만을 토로해야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가장 보통의 한국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좋은 문장이다. 그런데 여기 오류가 하나 있다. '비장애인'보다는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이다. 보통의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비장애인이 아니라 정상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장애인을 정상이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다. 사실은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이 맞지만, 보통의 한국인들은 이런 용어 하나를 바꾸는 것에도 매우 화를 낸다. 그러니 보통의 한국인에 맞게 잘못된 용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보통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페미니즘 목록이 참 재미있다. 그들은 한국의 페미니즘은 변질되었다며, 바로 위의 목록들만 페미니즘으로 인정해 준다. 무엇보다 남성을 부드럽게 설득하라는 점이 가장 웃긴 포인트이다. 이 책은 정말 남성분들이 읽으면 좋겠다. 일단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이해하기도 쉬울 것이고, 작가도 남자이다.
한국 남자는 공정과 팩트에 굉장히 예민하다.
-> 한국 남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단어가 바로 이 두 가지 단어가 아닐까?
하나의 원칙만 기억하면 된다. '어떤 것이 한국 남자에게 더 유리한가'만 고려하자. 한국 남자에게 유리할수록 보통의 한국인이 열광하는 공정과 팩트에 가깝게 인식된다.
-> 한국 남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정과 팩트는 항상 한국 남자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간다.
놀라운 사실은, 실제 한국 남자들은 이것들이 잘못됐다는 걸 진심으로 모른다. 몰라도 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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