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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피 쿠키 이어 _ <옥상에서 만나요> 2
    책 후기 2025. 1. 8. 10:19

     

     

    보늬

    언니가 돌연사한 후, 돌연사 프로그램을 친구들과 만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도로 살아나. 그따위 시답잖은 이야기나 하고 죽어버리면 안되잖아."

    "회사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날 줄 알았는데, 형편없어 보이는 얼굴들에 맥이 빠지고 말았다."

    "돌연한 죽음이었지만 돌연사는 아니었기에, 우리는 간단한 안내 메일을 보내고 데이터를 삭제해야 했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도 언니는 큰 소리를 내지 않았을 거다. 그런 사람이었다. 구급대가 왔을 때 여기요, 가볍게 손을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언니는 도태된 것일까. 종이 가만히 버리고 가는 일부였을까. 달팽이 진액처럼 뒤에 남았나."

    "언니 방에 들어가면 항상 눈물 냄새가 났다."
    "엄마인지 아빠인지 그 방에서 우는 게 틀림없었다."

    "21세기에 죽는 사람들은 결국 다 데이터가 될 거란 생각도 했다."

    "나의 춤추는 친구는 인생의 다음 장으로 산뜻하게 잘 넘어가는 성격이었다."

    "하다가 죽지 않는 거, 하고 싶다."
    "있어? 그런 거?"
    "...그럼 하다가 죽어도 상관없는 거, 하고 싶다."
    "그것도 없을 것 같은데."

    "어깨를 나란히 붙이고 잠시 그러고 있을 때, 양쪽을 킁킁대보았으나 눈물 냄새는 나지 않았다."

    "들렸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에. 우리들의 그 아픈 네트워크에 하얀 점들이 등록되는 소리가."

     


    영원히 77사이즈


    "인생이 이렇게 나쁜 농담 같은 것인 줄 알았더라면 그날밤 까치발을 하고라도 남자의 입술을 노렸어야 했다."

    되게 조예은 작가풍의 단편소설이다. <트로피컬 나이트>에 수록되어야 할 것 같은 소설인데. 묘하게 불쾌하면서 재미있는 단편.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삶과 죽음에 그토록 분절이 없었다는 게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한번의 암전도 없이 이어질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무의식적으로 마침표까지는 아니라도 쉼표는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죽어라, 살인범. 망해라, 서울시."

    "짝사랑은 모멸감을 잘 견디는 사람만이 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이 소울이 없는 서울에서는 절대 이해 못할 거야.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 죽음을 겪어본 여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너무 웃겼다.

    "여자의 오래된 사랑은 분명 식욕보다 강했다. 다만 그건 가능성을 죽이고 싶은 욕망이었다. 불안정하게 변하는, 뻔뻔하게 살아나가는 모든 것들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의 벼량 같은 것 말이다."

    소설에는 서울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여자는 사실 서울을 좋아했다는 것도 재미있다.

    "방은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에 아주 싸게 구했다. 서울에서 가장 위험한 건 여자일지도 모르니까 상관없었다."

    뱀파이어처럼 그것에게 물려서 언데드가 되어버린 여자의 이야기. 이 소설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망할 서울시이다. 너무 대놓고이긴 한데, 한국이 여자에게는 전혀 치안이 좋지 않다는 것을 소설에서 계속 말하고 있다. 그것에게 물리는 부위가 목이어도 되는데 굳이 가슴이어야 할까 싶었는데 남자들에게 죽임을 당한 여자들이 어딘가에서 차라리 괴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상상아닐까? 왜냐면, 이 여자가 또 남자의 거기를 물어서 피를 빨아 먹어버리잖아.
     

    해피 쿠키 이어

    "계형이라니, 한국 사람들은 이름을 어렵게도 짓는다. 나는 한동안 계형이를 게이혜엉이라고 불렀다."

    "영영 적응하지 못하겠지만 싫어하진 않는다. 제가 태어난 곳에서 부유하는 족속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까, 이스마일은 중동사람인 것 같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실습을 하는.

    "한 개인이 한 문화권의 죄악에 대해 바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면 한국 남자는 한중일 삼국 남자들의 죄악에 책임을 느끼는지 반문해야 할가... 덩어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는 덩어리래도."

    "일이 잘되려면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잘되듯이, 일이 잘못되려 해도 마찬가지로 맞물려 잘못된다."

    "아픔보다도 나중에 돌아가면 가족들이 쏟아낼 비난이 두려웠다. 왜 그런 짓을 했니? 왜 거절을 못하고 엉뚱한 일을 하다가 다쳤니?"
    - 공감되는 마음이다. 아파도 마음껏 아파할 틈이 없다.

    "교수님이 불러서 갔더니 엄청 참담한 표정이었다. 나는 참담하다는 말을 새로 배웠다."
    - 소설의 중간중간 이스마일이 새로 배운 단어들이 나온다. 이 글을 쓰는 동안 한국어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휘슬블로어라는 단어를 배웠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아니 해피 쿠키 이어가 해피 뉴 이어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그 이어가 그 이어였다니.

    "왜 거짓말하는 얼굴을 매번 잘 알아채는 것일까? 피곤한 재능이 아닐 수 없다."

    "알아차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지적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핵심 아닌가?"
    - 교수가 김치국물이 묻은 옷을 입고 와서 학생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써전이 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는 게.. 재미있지 않았다. 난 예전부터 괴짜인 교수가 싫다. 학생과 교수는 권력차이가 있는데 본인만 즐거운 거다.

    "아무 데에도 안 어울려요. 그래야 잘할 수 있는 일 아니에요? 어울리지 말아야, 따로여야 할 수 있는 일?"
    - 여자친구가 기자라니 잘 어울린다면 이스마일이 한 말.

    "문득 나도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한국에 있는 외국인이었다. 나와 같이 붉은 사막으로 가자고 하기엔, 너무나 푸른 풀이 돋은 무덤들 앞이었다."

    "옳은 불화라는 것도 있는 것일 테다. 옳은 불화로 기우는 개체들을 공동체는 소중히 여겨야 할 듯한데 보통은 그렇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마치 희귀 새 같았다. 그토록 소중한 존재를 왜 원하지 않는지, 괴롭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징계가 떨어진 근거는 그들이 입사 시에 서명했던 계약서와 사내 규칙에 명시된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 관련 부분이었다. 하지만 비리를 밝히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정말 이익에 반하는지, 반하지 않는지는 불명확한 부분이다."
    - 내가 생각하기에도 오히려 이익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경주에서 말하지 못한 것을 설악산에서는 말해야만 했다."

    "나랑 같이 우리나라에 가요."
    "어차피 여기 안 어울리잖아요. 콩도 못 먹잖아요."

    "알고는 있었다. 여자친구는 어디에도 안 어울리는 사람이고 그래서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걸. 어떤 초대로도 성공하지 못했으리라는 걸."

    "나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럴 땐 똑같이 말하는 게 제일 좋다."

    "요즘 내 귀는 아주 건조하다. 가끔은 두고 온 사프란이 줄어드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 보늬의 마지막 문장과 비슷하다. "들렸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에. 우리들의 그 아픈 네트워크에 하얀 점들이 등록되는 소리가."

     

    새해에 <해피 쿠키 이어>와 같은 작품을 만나니 재미있다. 해피 쿠키 이어다.


    이혼 세일

     

    이혼을 한 이재가 이혼 세일을 열어 친구들에게 물건을 싸게 판다고 한다. 이재를 생각하는 친구들의 에피소드가 짧게 짧게 나오는데 재미있다. 각자의 처지와 고민들은 모두 다르지만, 이재를 향한 애정은 똑같다.


    "물론 결혼은 장아찌와 고추장찌개로는 유지시킬 수 없는 아주 복잡한 합의의 상태라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재에겐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흉내 낼 수 없이 탁월한 부분이 있는데, 대체 그런 사람을 놓치고 모든 걸 망쳐버리는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 장아찌와 고추장찌개를 좋아하진 않지만, 텍스트만 읽어도 그 맛이 궁금하다. 이재가 만든 요리는 경윤이 결코 흉내낼 수 없다. 그런데 이재가 이혼을 한다니, 경윤은 이재의 남편이 이해되지 않는다.

    "한 가족의 행복이 불쑥 끼어드는 유전자에 이토록 영향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 지원의 아들들은 시아버지를 닮아 성격이 유별났다.

    "인간의 뇌는 스물다섯에서 서른 무렵에 완성된대. 그러니까 애들 성격은 계속 변할 거야. 이대로 고정되지 않을 거야. 너는 게다가 보기 드물게 일관적인 양육자니까."

    "그랬기에 지원은 어떻게든 아이들을 맡기고 이재의 이혼 세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서 무언가 근사한 말을 돌려줘야 했다. 주문 같은 말을."

    "응. 캐릭터도 주제도 다 정해져 있고... 이야기를 그냥 뜨개질처럼 뜨고 있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가닿으면 돼. 순서대로. 규칙을 지켜가며."

    - 이야기라는 게 이렇게 단순하게 만들어지는 거라면 좋을 텐데. 이재는 천재아닐까..?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데..


    "상큼한 이혼이 어딨겠어?"

    "그냥, 결혼이 부동산으로 유지되는 거란 생각을 했어.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금액의 집을 사고, 같이 갚으면서 유지되었을 뿐인 게 아닐까. 그래서 한동안 동산만 가지고 살아보고 싶어서."

    - 많이 공감되는 말이다. 결혼이라는 게 부동산으로 유지되는 것도 크지.


    "여섯 사람은 팔과 다리가 교차된 채 30분쯤 카라반 안에 머물렀다. 오래전에 자주 비슷한 식으로 앉아 있곤 했다는 걸 떠올리면서."
    "마음이 저려왔고, 다리도 저려오기 시작했기에 여섯 사람은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아영은 물건들이 제자리에서 조금씩 어긋나 있는, 아직 차 있지만 곧 비게 될 집을 둘러보며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점선을, 절단을 위한 선을 그릴 수 있었다."

    "완성된 뇌가 내린 판단을 믿어. 믿고 가."

     


    이마와 모래

    대식국과 소식국의 이마와 모래라는 인물이 각 나라의 언어를 알기 때문에 화살에 묶여 날라온 전서를 통역한다. 그런데 둘이 모두 언어를 잘못 해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한 탐욕의 끝은 다른 탐욕의 시작과 닿아 있지 않습니까."

    "그때 이마는 고작 열다섯이었지만, 나라를 위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한다고 믿으며 사막을 가로질렀다. 항구에 도착해서야 낯선 냄새에 뒤늦게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났다."
    - 너무 어린 나이인데, 낯선 냄새를 맞고 그제야 두려움을 느꼈다는 게 참 마음 아프다.

    "기억나지 않는 부모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간명한 것들의 신을 향하고, 소식국에서 지금껏 태어나고 죽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향하는 마음이었다."

    "죽는 순간까지 호수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그 시선을 따라가던 이마는 바로 이해했다."



    작가의 말

    "죽은 사람들의 나이를 눈금처럼 지나쳐 계속 살아가는 일이 가끔 아득하게 두렵다."
    - 나도 죽은 사람들의 나이와 내 나이를 비교하며 나만 나이가 들어감에 불편할 때가 많다.

    "<보늬>와 <해피 쿠키 이어>를 합치면 <피프티 피플>이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데, 역시 한 주제에 대해 계속 다른 각도로 쓸 뿐인 것 같다."

    나는 추천의 말에 쓰인 것처럼 냉소적인 사람인가 보다. 정세랑 작가의 책은 벌써 여섯권째인데. 하도 좋은 책이 많아서 그런지 이번 책은 조금 재미가 덜하다고 생각했다. 뭐 그래도 나도 모르게 후루룩 빠른 속도로 읽을 정도로 흥미롭긴 했는데. 정세랑 작가의 다른 책을 보고는 충격도 많이 받고 많이 울기도 했는데 이번엔 작가의 말에서나 울컥했다. 작가만큼 이 세상을 사랑하지 못해서 공감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고, 여성작가의 글에서만 나타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남성캐릭터가 이제는 재밌다기보다는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이 든다. 현실에 이런 나이스한 남자가 있을까? 있겠지..? 사실 나이스한 것도 아니야. 당연한 건데..

    다른 책에 비해 단편소설이 9개나 있어서 많은 편인데도 후루룩 엄청 빠른 속도로 읽었다. 왜냐면, 메모하고 싶은 문장이 엄청 많지는 않아서. 그냥 그 스토리를 빨리 따라가고 싶어서. 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높은 수위에 놀라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더 빨리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초반 단편에는 살짝 흥미를 못 느끼다 점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나니, 초반의 <효진>이 여운이 맣이 남는다. 그런데 단편소설들이 내용이 조금 어려울 수는 있을 것 같다. <영원히 77 사이즈>에서는 여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고, <이혼 세일>에서는 그래서 남편이 저지른 일이 뭐지 하고 조금 생각하다가, 아 남편이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거구나하고 뒤늦게 깨달았다. <알다시피, 은열>도 알다시피가 밴드 이름인데 문장 안에 들어가면 자꾸 알고 있듯이라는 맥락으로 읽혀서 헷갈렸다. 은열이라는 인물도 실존하는 건지 헷갈리고..

     

    이렇게 문장이 조금 헷갈리고, 잠시 이해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 빼고는 소설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너무 쉬웠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해설이 필요할까...? 사실 소설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소설을 모두 읽어내고 이제 책을 몇 장 안 남겼을 때 해설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긴다. 단편소설 하나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어서 해설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너무 어려운 단어를 쓰고, 과한 해설을 하지 않나 싶을 때가 있다. 이별을 고한 여자친구에게 폭언, 폭행을 하지 않고 불법 촬영물로 협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남성성-인간성의 규준이라니. 그냥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아닌가.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정세랑 작가 책 중에서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이제야 읽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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