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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라] 작가의 루틴 : 소설 쓰는 하루 (일부 후기)책 후기 2024. 9. 18. 17:05
윌라에서 조예은이라고 쳐서 나오는 책은 모두 읽은 것 같다. <작가의 루틴 : 소설 쓰는 하루>는 소설 작가의 하루 루틴에 대한 에세이이다. 사실 조예은 작가가 참여한 작품이 아니라면 봤을까? 시나리오 작법서는 가끔 보긴 하지만. 작가가 본인의 루틴을 쓴 것은 딱히 궁금하진 않았다. 글 더 잘쓰는 법,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법 이런건 궁금한데 말이지. 나는 조예은 작가의 팬이 되었지만 작가 개인의 사생활은 별로 안 궁금하다. 하지만 그의 글은 에세이까지 다 읽어버리고 싶긴 하다. <시선으로부터>에서 한 캐릭터가 시선의 모든 글을 찾아 읽는 것처럼. 그런데 몰랐던 직업의 하루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사실 책 한 권을 다 읽지는 못했다. 작품을 읽어 본 아는 작가들의 글을 위주로 읽었다.
1. 조식과 루틴_조예은
조예은 작가의 글은 사실 하루 루틴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복되는 루틴에서 벗어나서 여행을 가서 글을 써본 날들에 대한 에세이였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잡아 바다를 보며 글을 쓰는 하루라 좋을 것 같다. 며칠이라도 그런 여행을 가보고 싶다. 나는 작가가 아니지만, 읽고 쓰는 것에만 치중한 여행이라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현실에서는 절대 볼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환상 일기."
- 작가는 잠을 잘 못 자던 시절 꿈 일기를 자주 썼다고 한다. 확실히 꿈이란 것은 좋은 소재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전개로 이야기가 벌어지고, 생각보다 재미있는 사건이 많다. 어떻게 이런 게 내 머릿속에 벌어지는지 신기할 때도 많다. 나는 쥐 떼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쥐가 사람을 보고 달려들면 그 사람도 쥐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쥐 떼가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많은 숫자였다. 그 전경이 신기했다. 그렇게 자세히 상상을 할 수 있나 사람이.
작가의 하루 루틴이 내 백수 생활과 크게 다를 바 없어서 신기했다. 물론 작가가 더 생산적인 일을 많이 한 것 같긴 하지만. 떠지지 않는 눈을 뜨고 억지로 책상 앞에 앉고, 일어나서 밥 먹고 정신을 차리면 이미 오후이고. 어떻게든 할 일을 하고 저녁에 OTT 창을 떠서는 볼 게 없다고 투덜거리고. 사람 사는 세계가 다 비슷하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집에서 일을 하는 프리랜서의 삶은 좀 어려울 것 같다. 하루를 낭비만 하고, 나는 왜 알아서 못하지 하고 불안감에 살 것 같다. 이번 연휴도 너무 길었다. 사실 이렇게 연휴가 길면 조금씩 불안해진다. 하루하루를 끝장나게 놀든가,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다. 직장을 다니느라 못했던 것을 다 하든가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다 본다든가 책을 많이 읽든가. 사실 이번 연휴에 나는 목표했던 분량의 글도 써냈고, 혼자서 영화도 보러 갔다 오고, 집 정리도 했고, 블로그에 글도 여러 번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차라리 회사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미루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는 정말 백수나 프리랜서의 삶이 맞지 않나 보다. 규칙적인 삶과 개인 시간이 많은 삶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프리랜서의 삶을 마음껏 엿보았다.
"여행지에서 낯선 풍경을 보며 작업하는 건 내 오랜 로망 중 하나였다."
"전업생활을 한 지 2년째지만, 안타깝게도 그중 실행한 로망은 몇 없었다. 로망 실현을커녕 마감과 불안에 치여 집과 카페만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을 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이번 여행이 그저 그런 도망으로 끝나지 않고 충전의 시간이 되기를. 어, 그런데 사실 모든 휴가는 결국 도망 아닌가?"
"어디선가 습관을 만드는 데에는 단 사흘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루틴을 피해 도망친 여행지에서 그토록 원하던 새 루틴을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많은 일들이 그렇다. 예상치 못한 계기로 전혀 다른 지점에 도달하고, 그렇게 튕겨지거나 도망친 곳에서 새로운 동력을 얻기도 한다."
"뭔가를 하고 싶어서 돌진하는 마음보다는 하기 싫어서 피하는 마음으로 얼결에 한 발을 내디딘 것들이 여기까지 왔다."
"내 루틴은 아마 루틴이라는 말이 의미 없을 정도로 들쑥날쑥하겠지만 그게 바로 동력이지 매력이 될 것이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일렁이던 파도와 같이."
이렇게 뛰어난 작품을 많이 쓰고, 상상력이 넘치는 작가도 단조로운 일상을 지루해하고 해야 할 일을 잘 하지 못해 불안해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솔직히 말해서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같은 작품을 만들었으면 이미 인생에서 엄청난 성취를 이룬 거 아닌가? 어쨌든 작가가 즐겁게 작품을 계속 써주면 좋겠다.
2. 열린 결말_최진영
최진영 작가는 확실히 능력치가 탄탄한 작가이구나 느꼈다. 에세이만 봐도 엄청난 글솜씨에 완벽하게 자리잡은 루틴까지 역시 여러 작품이 잘 된 작가는 다르구나.
"출간한 책이 쌓이면서 어느 날부터는 조금씩 인세가 들어왔다. 원고 청탁도 차차 늘어 갔다. 과거의 내가 꾸준히 해 놓은 일이 현재의 나를 살리는 느낌이었다."
- 글 쓰는 일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도 맞는 말이다. 과거의 내가 해 놓은 일들이 결국 현재의 나를 살린다.
"어쩌다 들어온 운을 계속 곁에 두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매일 글을 쓰는 것."
- 참 부지런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퇴근 후에, 밤 열한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글을 썼다. 진한 커피를 가득 담은 컵을 들고 방에 들어와 책상 위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북이 부팅되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원래의 나로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작가의 루틴은 거의 완벽한 수준이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비슷하고 간단한 운동, 청소, 식사, 머리감기까지 항상 같은 일을 같은 시간에 반복한다. 몸이 아프거나 우울해도 매일의 루틴을 지켜낸다. 그 꾸준함이 정말 대단하다.
"내가 내버려 둔 것, 외면한 것, 지키지 못한 것, 미래의 나에게 미루고 과거의 나에게 버린 것... 현재의 나는 그런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때로 나를 가격하는 우울감, 무력감, 좌절감, 낭패감, 비관적 사고 등의 기원은 바로 그런 것들에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 닦아 내야 한다. 나는 내가 치워야 한다."
"한글 창을 열기 전에 시 서너 편이나 에세이 한 꼭지 또는 단편소설 한 편을 읽는다. 타인의 글을 읽으며 감탄하고, 배우고, 부러워하다 보면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에도 서서히 불이 들어온다."
- 많은 작가들이 항상 글을 읽고, 영화나 드라마라도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이 공감되었다. 타인의 글을 읽으며 감탄하다 보면 내 글도 쓰고 싶어진다.
"나의 글을 쓴다는 것은... 잘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나는 왜 이렇게박에 못 쓰나 자책하는 것.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상태로 계속 백스페이스키를 누르고 한 문장도 완성하지 못한 상태로 연거푸 엔터키를 누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리 거듭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
작가의 하루 목표량이 재미있었다. "하루 원고지 12매 새로 쓰기"라는 이상적인 계획을 세운다. 평소에는 하루에 8매도 어렵고, 6매 쓰기가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한화 이글스의 팬이라고 한다. 이글스는 경기 성적이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항상 목표를 승리하기, 우승에 둔다. 그와 비슷한 마음으로 작가도 이상적인 목표를 둔다. 그리고 가끔은 이글스는 경기에서 승리한다. 그리고 작가도 가끔은 12매로 쓰기도 한다. 이런 목표가 정말 좋았다.
"산책을 하면서 깨닫는다. 방에서 내가 느낀 위기감이나 조급증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우스운 감정이었는지. 세상은 나의 일에 관심이 없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한다고 큰일이 날 리가 없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하면, 내가 글을 쓰지 못할 뿐이다."
- 그리고 작가에게는 산책하기도 하루의 루틴이다. 나도 산책이 참 좋은 것 같다. 걷는 것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고 운동도 되고, 좋은 휴식시간이다.
"읽고 싶은 책은 쌓여만 가고 나의 글은 한 발 나아간다. 하지만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1월 중순이면 한국시리즈도 끝나고, 밤하늘에 별은 밝게 빛나고, 겨울은 근처에 있다."
"깊은 밤 잠들기 전 나는 아무도 아니고 아무렇지도 않길 원하므로, 가장 많이 울고 웃는다."
"장편소설은 2년에 한 권, 소설집은 6년에 한 권 출간한다. 여름에는 글쓰기 작업보다 외후 행사가 많은 편이다. 겨울에는 주로 장편소설을 쓴다."
-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이 정도 속도로 책을 내는구나, 어떤 이야기를 쓸 때 더 편안하구나. 신기하다.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재미있는 것 같다.
윌라의 3개월 무료가 끝나간다. 이제는 종이책이 읽고 싶은 것 같다. 듣기만 하는 것은 잘 안 들릴 때도 있고, 가끔은 연기하는 것보다 그냥 AI가 읽어주는 게 좋기도 하고, 오류도 은근 많고.. 윌라에 읽고 싶은 책이 많지 않아서 조금 아쉽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게 더 좋은 것 같다. 그래도 3개월 동안 꽤 쓸모 있게 잘 썼어. 윌라에만 있는 소설도 읽고, 도서관에서 못 본 책도 읽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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