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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일 년>, <답신>책 후기 2024. 8. 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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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3. 일 년
"그녀는 잠시였지만 그들에게 정성껏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그 느낌은 수술 후 그녀의 혈관을 흐르던 모르핀처럼 부드럽고 달았고, 그녀는 덜 아플 수 있었다. 그들이 한때 누구보다도 그녀를 아프게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었지만."
- 참 가슴 아픈 일인데 무엇보다 공감가는 이야기이다. 여기는 직장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대부분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겪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를 괴롭힌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 가정폭력을 당하면 가족에게 사랑받고 싶고, 학교폭력을 당하면 나를 괴롭힌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 회사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할 것이다. 이게 참 비참한 일이지만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 다희를 보며 그녀는 입사 초기의 자기 모습을 떠올렸다. 회사 사람들에게 애써 최선을 다하려 했던 자신의 모습을, 그뒤의 낙담을."
"그렇게 매일 두 시간 남짓 달리는 차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동안 그녀와 다희는 선후배도, 친구도, 애인도, 우연히 지나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 시간을 지나며 그녀의 마음은 두 갈래로 갈렸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자신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마음과 다희와 계속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자기 방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던 마음 안에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 기억이 자주 떠올라요. 저를 지키려는 매 순간순간이 무서웠을 것 같고. 용기를 냈어야 했을 것 같고. 세상 소심한 사람이 막, 씨발년이라는 말도 해야 했고."
- 참 마음이 아팠다. 용기를 내야 했을 그 마음이 알 것 같아서.
"어떤 말도 없었지만 그녀와 함게 있어서 버겁고 불편하다는 분위기가 감돌 때, 우리의 세계에 온전히 소속될 수 없는 당신을 나는 안타깝게 여기지만 도울 생각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
"그녀는 그런 상황에 체념한 채로, 그 모든 일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고통스러웠지만 살아졌고, 그녀는 살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그녀는 더이상 겉돌지 않았고, 그들의 세계에 나름대로 진입했다. 모든 건 변하고 사람들은 변덕스러우니까."
"그녀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회사 사람들을 어두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좋은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고 있다느 생각은 고통이었으므로, 그녀는 차라리 나쁘고 냉혹한 인간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여기는 편을 택했다."
"그녀는 회사 사람들의 얼굴, 목소리, 몸짓, 혹은 그들의 존재 자체에서 그들을 혐오할 수밖에 없는 혐의를 발견해냈다. 자기 속이 얼마나 망가졌느지도 모르는 채로 그녀는 그 일을 매일 반복했다."
"그가 내리고, 그녀는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구을 봤다. 예전이었다면 김상무의 그런 말에 억지로라도 웃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그녀는 분명 안도했고, 그런 식으로라도 자기 존재를 인정해주는 그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차별하는 사람의 입장에 설 수 있게 한 그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 거울에서 그녀가 본 건 기쁨과 안도가 스민 진짜 웃음이었다."
- 슬프지만 공감가는 이야기였다. 차별에 민감하게 굴지만, 나 역시도 이러한 기존 체계에 들어갈 때 안도감이 든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차별이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그래도 대학은 나왔다는 안도감. 그래도 인서울 4년제 대학이라는 것.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마른 내 몸, 누구보다는 어린 나이. 모두 상대적인 것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러한 것에 그래도 기쁨과 안도가 찾아오기도 한다. 사람은 역시 이기적이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드니까, 가진 게 없는 사람들끼리 더 싸우고 서로 미워한다고. 이런 책을 읽으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해도 내가 과연 그렇게 살고 있나. 가진 것 없는 내가 이러한 신조를 지키며 살 수 있나. 그런데 내가 그런 것을 지키면? 다른 사람이 알아주나. 알아주기 바라고 행동하면 안 된다지만. 내가 이러한 태도를 지키며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더 주어도 돌아오지 않은 기억이 많다. 이러한 지점을 이 책이 너무나도 잘 서술했다. 그녀가 회사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 후 찾아온 낙담들. 그러한 낙담들이 쌓여서 다들 김상무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오늘은 이렇게 적고 내일은 다시 돌아간다해도 다시 또 다시 다짐해야지.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는 인생의 가치관을 돈, 명예가 아니라 이러한 것으로 삼으라고 했으니까. 나는 정직하게 살기, 부끄럽지 않게 살기,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살고 싶다.
"다희는 지난 삼 년 동안 무리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 시간은 그녀가 상황 판단을 잘하지 못했다는 인상만을 남길 것이었다."
- 다희가 삼 년 동안 언론공시를 준비한 시간은 회사 입장에서는 시간을 낭비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회사는 "별다른 실패 없이, 매번 똑똑한 선택을 하여 기업에서 요구하는 것을 최대한 빨리" 갖추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리해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선밴 인턴이었던 적 없죠."
"불안해 보이는 다희를 볼 때면, 그녀는 자신의 위치에 옅은 죄책감을 느꼈다.'
"공채 출신의 정규직 사원과 친밀하게 지냈더라면 그런 질문을 받을 일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 다희를 태워주는 그녀에게 회사 사람들은 왜 떠날 확률이 높은 사람에게 잘해 주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다는 말이 참 좋았다. 공감도 많이 되었고. 나도 자주 서운해하는 사람인데. 이건 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다. 다희와 그녀가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좋아하는지가 잘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로 인해 상처받고 더이상은 가까워지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그 둘의 잘못이 아닌데. 서로 좋아해도 서로 아픔이 될 수 있구나. 서로가 서로를 좋아함에도 멀어지는 관계가 있다.
"인턴 셋이 작업을 했는데, 내년에 우리 셋 중 둘은 여기 없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아, 그 하나가 내가 되어야 한다고 정말 간절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비정규직의 설움이 뭔지 잘 안다. 이게 묘하게 사람을 치졸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을 못되게 만든다.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도 생각났다. 미나는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인연을 하나 놓친다.
"사실 그녀는 그날 사람들에게 다른 식으로 말할 수도 있었으니까. 다희씨랑은 말이 잘 통해서 친해졌어요. 아, 다희씨 없는데서 다희씨 이야기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게 말하면 따라붙을 질문이 귀찮고, 어색해질 공기가 두려워 그렇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었으니까."
- 그래.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을 때 그녀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회사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다. 너무 깐깐한 사람, 같이 일하기 불편한 사람,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될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 잠근다."
"저는..... 다희씨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조금은 좋아하게 됐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에요.'
"다희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할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는 말도.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다희와 주고받던 이야기들 속에서만 제 모습을 드러내던 마음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누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마주볼 때면 더는 누추한 채로만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 둘의 이야기들은 서로를 비췄다."
4. 답신
"기록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같은 날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한꺼번에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거든'
- 기록에 대한 나의 생각도 비슷하다. 일기를 가끔씩 쓰려고 한다. 블로그에도 기록하고, 어디에라도 기록을 남긴다. 왜냐면, 거의 매일이 비슷해서 점점 일기의 내용은 다를 게 없지만, 뭐라도 적지 않으면 너무 비슷한 시간들이라 한 번에 갑자기 없어져버릴 것 같애서. 비슷한 날들이라 기억도 잘 안 남고. 사실 일기장을 들춰보면 다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지금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상처가 나도 금방 회복할 수 있는, 살아온 모든 시간을 망각 속에 던져버릴 수 있는 나이에 너는 나를 떠나보냈구나."
"그 기대가 꺾이고 꺾여 더는 꺾일 게 남지 않게 되자 언니는 엄마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듯이 말하곤 했어. 엄마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그건 내가 처음으로 알아차린 다른 사람의 거짓말이었지. 언니의 그런 거짓말들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언니가, 나보다 삼 년을 더 엄마와 보낸 언니가 솔직히 부럽기도 했던 것 같아."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엄마가 우리를 떠났던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야 나는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 우리를 떠났을 대 엄마는 고작 스물일곱이었거든. 그리고 다른 사람을 원했지. 안전해지기를 원했고."
- 엄마는 스물에 언니를 낳고, 스물 셋에 '나'를 낳고, 스물 일곱에 집을 떠났다.
"나는 이제 나보다 한참 어린 여자애를 바라보듯이 내 마음속 엄마를 바라봐. 어리고, 슬프고, 고립되고, 힘이 되어줄 사람 하나 없는, 자기편 하나 없는 어린 사람을 봐.'
"과장되게 웃기도 하고 재미있게 노는 척을 하면서 곁눈으로는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힐끔거렸어. 아빠가 가끔 피식 웃기라도 하면 마음이 둥글게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지."
- 아이들이 아빠의 주변에서 놀면서 아빠가 우리한테 관심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참 마음이 아프다. 아빠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자식은 부모를 좋아하고, 부모가 자기를 좋아하길 바란다. 그 어린 애들이 아빠 앞에서 아빠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서 노력하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언니는 그때 고작 열 살이었어. 나는 천박하다는 말의 뜻을 몰랐고, 언니도 정확히 알지는 못했을 거야.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아빠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우리는 그 단어의 뜻을 가슴으로 이해했어."
"할머니가 그 말을 했을 때 내게 밀려오던 낯설고 두려운 느낌의 장체를 알고 싶지 않아서였어. 창녀라는 말이 내게서 아주 멀리 있으면서도 사실은 나와 관련된 말일 거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거든."
- 아주 멀리 있는 단어이면서도 사실은 나와 관련된 말이다. 왜냐 하면,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나와 관련없는 말이지만, 나를 욕할 때 상처주기 가장 쉬운 말이기도 하다. 수치심을 주기 가장 쉬운 말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행동을 제약하기 좋은 단어이다.
"그러다 아빠가 언니에게 고급 창녀가 되고 싶냐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단어가 내게 한 발짝 더 다가오는 걸 느꼈고, 그 말과 연결된 나의 존재가 불편하고 불쾌하게 느껴졌어. 시간이 지나서 그런 감정을 수치심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지."
"아빠는 그런 식으로 언니만을 지명해서 상처를 줬어. 하지만 나도 상처받지 않았던 건 아니야. 나는 내 존재를 언니와 떨어뜨려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고모할머니는 아빠 같은 사람이 없다고 했어.'
- 어른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그런 이유는 아빠가 돈을 벌어오기 때문에. 아이들을 때리지 않기 때문에. 때리지 않는다는 당연한 일을 가지고 고마워하라는 가스라이팅을 여자들은 많이 당한다.
"어린 시절부터 오래도록 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느끼며 자라서인지 나에게는 내가 결코 타인에게 호감을 살 수 없는 사람, 멸시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거든."
"그렇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고 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나의 욕구를 무시했지."
- 어렸을 때 애착을 어떻게 형성했는지가 사실 꽤 오래동안 우리를 괴롭힌다. 최은영 작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매우 높은 것 같다.
"다음해 겨울에 언니가 사준 오리털 파카를 입고서야 나는 내가 추위를 심하게 타는 편이 아니라 단지 그전에 충분히 따뜻한 옷을 입지 못했을 뿐이라는 걸 알았어."
"어른이 된 지금, 길을 걷다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여자아이들을 보면 놀라운 마음이 들어. 어떻게 저렇게 어린 아이들을 이용할 수 있지?"
- '나'는 고등학생이 된 언니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언니가 얼마나 어렸는지, 아이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나이가 많은 남자를 만나면, 까졌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렇게 어린 아이를 만나는 남자가 이상한 건데.
"나 자신을 열심히 설득하려 했지만 언니는 자신을 숨기는 일에 서툴렀고 나는 그런 언니에게 분노를 느꼈어. 이럴 거면 제대로 숨기기라도 해. 마음속으로 소리쳤지."
- 어린 여자를 만나는 그가 아니라, 언니가 더 미웠다. 가부장제 속에서 많은 여자들이 이러하다.
"내가 두려움을 누르면서 그렇게 말하자 언니가 답했어."
"나는 가슴이 뜨겁게 녹아내리는 걸 느끼면서 말했어."
"나는 언니에게 그렇게 기대고 그렇게 의지했으면서 정작 언니에게 전혀 힘이 되어주지 못했구나, 언니의 허기진 마음을 조금도 채워주지 못했구나."
"참는 건 내 생존 방식이었지. 맞서 싸웠다가 결국 곤란해지는 사람은 내가 될 거라는 걸 알아서이기 했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상황에 자기 자신을 몰아넣은 언니의 어리석음에 화가 났지. 그래, 언니를 비난할 수 없다고 애써 생각하면서도 내 마음은 그런 순간순간마다 언니를 원망했어."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언니와 같은 요에서 잠들었었는데, 한쪽이 비어 있는 요를 손으로 쓸어보면서 나는 언니의 부재를 조금씩 받아들였던 것 같아."
"언니의 눈을 보면서 언니를 도우려는 내 노력이 오히려 언니를 난처하게 한다는 걸 알았지.'
"너희 형부는 착한 사람이야."
"언니는 내가 그 말을 믿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말투로 얘기했어.'
- 그렇게 본인도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남들도 봐주길 바랬고. 가부장적인 체제에 착취당하고 있는 여성들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 하는 자기합리화일 것이다.
"네가 자면서 배냇짓을 할 때 나는 네 안에서 분주히 세워지고 있을 네 안의 세상이 궁금했고 그곳이 어떤 세상이든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어."
"쉽게 짜증을 내고 까다로운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어. 다른 사람의 삶을 오랜 시간, 어쩌면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 내가 좋아할 수 없는 내 모습을 자식에게서 문득문득 발견하게 되는 일을 내가 잘 감당해낼 수 있었을지 자신할 수 없어. 내가 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무관하게 무겁고 복잡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을 거야."
- 너무 공감되는 말이었다. 나와 닮아서 좋으면서도 싫을 것 같다. 마냥 좋아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안 하는 사람들이 애를 낳는 거겠지. 나는 아이를 낳으면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나보다 어려서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아이를 질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내가 너무 소중해서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만들 자신이 없다.
"돌잔치는 그의 고향인 Y군에서 열렸지."
- 이런 점이 너무나 거슬린다. 청첩장에는 남자 이름을 먼저 쓰고, 아이를 낳으면 남자의 성을 주고, 결혼식은 남자가 사는 곳에서 하고, 돌잔치는 남자의 고향에서 하고. 나는 이 모든 걸 여자를 기준으로 하면 좋겠다.
"스무 살의 나는 사람들의 본격적인 악의에 대해 잘 몰랐지."
"마음이 상한 건 아닌지 걱정된다, 그런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홀을 나와서 뒤돌아봤을 때 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어머니와 이야기하고 있더라.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 내가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시어머니의 비위를 맞출 자신이 없다. 남을 마음대로 평가하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솔직히 이미 태어난 이상 맺어진 가족은 어느 정도는 참겠는데, 결혼해서 만들어진 가족들까지는 못 참을 것 같다."사랑해."
"언제까지?"
"영원히, 영원히."
"내가 그애보다 잘났거나 현명해서 충고하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의 작은 호의나 관심에도 마음이 활짝 열릴 정도로 정이 고프고 외로운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고 했지."
"매일 밤 나는 차가운 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누워서 눈을 뜬 채 생각했어. 난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 걸까."
"그럴 때면 내가 아직 스물두 해밖에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 벌써 백 년은 산 것 같은데, 이미 너무 오래 산 것처럼 지쳐버렸는데 아직도 스물둘이래. 밤하늘 아래의 불빛들이 반짝이면서 너는 앞으로도 살아야 해, 살아가야 해, 하고 낮게 합창하는 것 같았어."
"내 안에서는 그런 언니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나와 언니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또다른 내가 싸우고 있었지."
"언니가 느낄 수치심을 어림하면서 뒤틀린 만족감을 느꼈지. 나는 언니의 무너진 마음 위에 올라서서 입을 열었어."
"언니의 삶을 다른 사람에 의해 이미 망가진 것으로 취급했어. 내가 언니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언니를 가르치려 했어. 언니의 삶이 망했다고 판결했어. 그것이 나를 어린 시절부터 돌봐준 언니에게 내가 한 보답이었다."
"그녀는 여자 피고인들이 사실이 아닌 불리한 증언을 부정하지 않고 자포자기하듯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이 있다면서 나도 그런 것 같다고 했어."
"하지만 어떤 글을 남기기로 선택하는 것은 결국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바람을 담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마음은 실제로 전해지지. 상대가 그 글을 읽든, 읽지 않든 말이야."
"때때로 사랑은 사람을 견디지 못하게 하니까."
"결국 찢어버릴 편지를 쓰는 마음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하는구나."
너무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 다시는 안 읽고 싶었는데, 블로그에 쓰려고 두 번을 읽었더니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 어쩔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건 소설이고. 현실이라면 그냥 연을 끊고 사는 게 맞지 않나. 내가 남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내가 판관이 되어서 남을 멋대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지 너무 공감이 된다. 하지만 언니를 너무 사랑하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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