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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의 첫 독서 _ <옥상에서 만나요> 1책 후기 2025. 1. 4. 01:14반응형
사실 12월부터 1월까지 읽었으니 1년에 걸쳐 읽은 셈이다.
어쨋든 1월의 첫 책!
오블완 이모티콘도 받았다.
25년의 첫 포스팅이자 첫 이모티콘 사용이다.
웨딩드레스 44
<웨딩드레스 44>는 미리보기로 오래 전에 읽어본 적이 있다. 알라딘이나 예스 24, 심지어 카카오페이지도 미리보기가 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이 단편소설 하나는 미리보기로 다 읽을 수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의 감상은 구성이 특이하고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한 드레스를 입은 44명의 여자들을 따라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게다가 44명이라니, 한국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지독한 코르셋 44사이즈도 연상되게 제목을 잘 지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페미니즘이 가득해서 재미있었다. 특히, 사랑하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고 공포도 느끼는 여자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그런데 처음 읽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가 보다.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좀 온건파가 되었나봐, 여자들이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동시에 그냥 결혼 안 하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왜 저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지 이해가 안된다.. 음.. 아무래도 온건파는 아닌 듯.
효진
처음에 효진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조금 헷갈렸다. 효진은 한국인이고 지금 도쿄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효진이 한국에 있는 친구(이또한 한국인)에게 전화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된다."적의에 대해 생각해. 적의에 오래 노출되고도 괜찮은 사람은 여기든 거기든 없을 거야."
"내가 다친 이마의 그 부분은 언젠가 네 얼굴에 무지개가 맺혔던 부분."
지금의 남자친구가 좋은 이유를 나열한 부분들이 좋았다.
"너도 힘들구나, 그게 우리 관계의 바탕인 거 같아."
- 좋은 관게일까? 가끔은 사람들이 사랑한다기보다는 연민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또 그럴 수 밖에 없겠지.
"나머지들은 뼈대가 약하고 피가 흐려 계집애나 다름없다는 게 일관된 주장이었지. 오빠에게라면 몰라도 계집애인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해봐야 어쩌란 건지, 자라는 내내 그랬지."
- 계집애를 욕으로 쓰는 말이 정말 어이없다. 정말 그것도 계집애가 듣는데서 왜?
"집을 떠나면서 나는 명절에도 돌아가지 않는 애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어. 띄엄띄엄 돌아갈 때마다 마음이 누그러지기는커녕 거기가 내 집이 아니란 것만 더 확실해졌어."
"어찌나 효율적으로 움직였는지 5미터 바깥에서 내게 닥친 작은 재앙을 미리 알아챈 것 같았어."
- 근이와의 첫 만남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생색도 내지 않았던 근이.
"근이는 뭘 해도 자연스러운 사람이었어. 너는 근이의 그런 면에 대해서 억눌린 데나 뒤틀린 데가 없다고, 사랑받고 속 편하게 자라서 그렇다고 했지. 나같이 오류가 많은 여자애는 그렇게 내부구조가 단순한 남자애를 만나는 게 맞을거라고도 했어."
- 근이 같은 아이가 참 부럽다. 오류가 많은 사람들은 나아질 수 있을까. 살면서 이미 안 좋은 경험을 많이 해버렸는데, 근이처럼 될 수 있을까.
"맨홀에 낀 굽을 빼주는 정도의 귀여운 일은 언제나 일어나고, 근이는 좀처럼 집요한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억눌리지도 뒤틀리지도 않은 사람이 집요하기란 쉽지 않아, 그치?"
- 이 문장이 좋았다. 슬프긴 하지만, 어떤 관계는 결국 끝나기도 하니까. 근이 같은 아이는 집요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자주 만났어. 계절이 바뀔 무렵에, 애인이 바뀔 무렵에 한 번씩."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대학원에 와버린 케이스."
"가난하기로 치면 나도 가난하고 사실 내가 도망친 건 가난보다 좀더 어둡게 끈적이는 어떤 것으로부터였는데"
-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딱 이 말 그대로 끈적이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이렇게 공감이 가는 글을 쓰는지..
"두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하네다공항에서 수화물을 찾으며 내가 느꼈떤 안도감에 대해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더 멀리 날아갔다면 더 큰 안도감을 느꼈을까."
-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효진과 너무 닮았다. 그런데 도망가고 회피하는 게 무조건 나쁜 걸까. 엄마가 아프니까 너무 당연하게도 딸에게 간호를 요구하는 아빠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는 여자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엄마가 아프니까. 그런데 정말 도망가는 게 나쁜 걸까.공감이 많이 되었다.
"태어난 곳으로부터, 소속된 모든 집단으로부터, 제대로 된 관계로부터 도망쳐왔어.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 남보다 못한 가족들과도 어떻게든 연을 이어가려고 애쓰고, 처음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해내고, 지옥 같은 회사를 개선시키고, 성격이 안 맞는 애인과 다투고 다퉈서는 안정적이 관계에 다다르지. 그런 사람들을 좋아해. 그런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어."
효진은 근이와 닮은 남자친구를 사귀고, 근이는 효진과 닮은 여자와 결혼했다. 둘이 가장 사랑했던 것은 서로였을 것이다.
현실에서 겪을만한 일들이 많아서 참 마음 아팠다. 전형적인 한국의 아빠가 딸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하는 말들이 폭력적이고, 가난이 가져다주는 어두운 마음, 사랑했던 사람이 행하는 폭력. 책의 말을 빌려서 끈적한 것이 계속 괴롭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또 효진이 말하는 상대인 친구와의 그 우정은 너무 좋았다. 효진의 경험들 중에는 소중한 것도 많아서 다시 효진의 추억을 들어 보고 싶을 것 같다.
알다시피, 은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나는 걸까, 버스가 터널에 들어설 때 입안으로 중얼거렸는데 터널을 벗어날 때쯤 깨닫게 되었다."
- 도입부가 참 재미있다. <설국> 도입부보다 더 재밌는데.
은열에 대한 이야기가 참 흥미롭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지. 나라도 은열이라는 인물을 역사적 사료에서 찾게 된다면, 더 알고 싶을 것 같다.
"산적일 때도 해적일 때도 토벌하지 않다가 전근대의 가장 강력한 체제인 가족에서 벗어나니까 토벌해버렸다."
"그 부분에 다다르면 먹 냄새가 피 냄새처럼 느껴져 책을 덮고 만다."
다국적 집단의 리더였던 은열과 다국적 밴드에 소속된 정효는 조금 닮았다. 그리고 작가도 이런 사람인 것 같다. 저번부터 느꼈는데 작가는 인종과 성별로 인한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을 넘어 그러한 세상을 글로 쓰고자 하는 것 같다. 은열의 공동체는 여자와 남자들이 모여 사는데, 매우 자유로운 집단처럼 보인다. 가족을 이루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고 만국의 고아들을 거두어 같이 생활한다.
나도 요즘 정효가 밴드를 하듯, 어떤 집단에 속했는데 매우 즐겁다. 그래서 정효의 밴드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나도 그들과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연애는 없이. 정효가 키스를 피했던 것처럼.
"그러면서도 우리 세대가 주도권을 잡았을 때 이 모든 일들이 나아질까 확신하지 못했다. 같은 나이라도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나는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여자니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세대는 여자니까라는 말에 얽매여서 살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 동년배들도 여자, 남자라는 틀에 갇힌 생각을 많이 하더라.
"나는 죽고 없는 사람들에게 중얼거렸다."
"너는 괜찮겠어?"
"응?"
"끝내지 않아도 괜찮겠어?"
"그건 그런 문제가 아니지만, 어쩐지 그럼 문제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이 떠나기 전까지 멈출 생각이 없다. 아마 친구들이 떠나고 나서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 이 문장이 슬펐다.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나도 정효처럼 멈추지 못하는 사람같다.옥상에서 만나요
"초코 바나나 타르트, 블루베리 슈크림, 꽃처럼 피어나는 다양한 이름의 설탕을. 하지만 설탕조차도 내가 점프를 생각하는 걸 멈추게 할 수 없었어. 달고 신 것으로 녹일 수 없는 나쁜 생각들이 있잖아."
"원, 투, 쓰리, 포, 점프. 사선으로 스텝을 밟아 가로대를 뛰어넘는 높이뛰기 선수처럼 그 옥상 난간을 뛰어넘고 싶었어."
"충동도 없이 무심하게 언젠가는 정말 점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불안마저도 둔하고 먼 것이었어."
"대개의 날엔 난간에 다가서는 대신, 주변 다른 빌딩의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어.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서 마주친 선원들처럼 손을 흔들고 싶은 마음이었지."
최피디의 성희롱에 화도 내지 못하고 화제를 바꿀 때, 맞은편에 앉은 사수의 고개가 7.5도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많이도 아닌 그 작은 외면을 감지하고 만다.
"더러운 관행이지만 아무도 바꿀 의지가 없어 계속되는 일을 하며 돈만 까먹을 뿐,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걸."
"변화를 원했어. 탈출을 원했어. 계급 상승을 원했어. 그 모든 것의 답이 결혼이 아닌 줄 알면서도."
- 결혼을 하는 이유 중에 변화와 탈출을 원하는 마음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백 퍼센트 도피 아닌 결혼이 어딨겠어? 여자들에겐 언제나 도망치고 싶은 대상이 있는걸.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드러나는 문장이 가끔씩 등장하는데 그게 너무 공감된다. 내가 속한 집단이 싫어서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나는 특히 가족이 싫어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생각된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라도>의 <답신>처럼. 여기서도 아빠에게 상처를 많이 받은 아이가 너무 빨리 결혼을 택해버리거든. 집이 싫어서, 가족 중에 마음을 둘 사람이 없어서 남자를 찾는 여자들이 많은 것 같다.
https://aaaa-dlek.tistory.com/109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일 년>, <답신>
https://aaaa-dlek.tistory.com/99 중 와 에 대하여" data-og-description="최은영 작가의 와 , 을 읽었다. 다들 많이 울은 기억이 있고, 책 내용은 거의 까먹었다. 다 빌려 읽었던 것 같은데, 은 빌려 읽다가 너무
aaaa-dlek.tistory.com
"뭐든 간에 내가 불렀으니. 나는 성숙한 사회인이자 시민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사무실로 내려갔어."
남편을 소환할려다 멸망의 사도를 소환하다니. 하지만 성숙한 사회인으로 책임을 질려고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운명의 혼인 상대가 소환된다는데 멸망의 사도가 왔다면 그것이 운명의 상대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누구보다 멸망을 바라는 인물이라.
"더 나빠질 게 없다고 생각해도 더 나빠지는 게 인생이란 걸 알면서도, 기가 막혔어."
멸망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알아? 소도시의 청소년, 특히 망한 공단이 있는 지역의 청소년들은 서울 애들보다 훨씬 더 농도 짙은 절망을 한다는 거?"
"머리를 기르진 않았지.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기분 좋아서."
"내가 너에 대해 이상한 책임감을 느끼는 게 왜인지는 모르겠어. 분명히 말할게. 연민은 아냐. 연민은 재수없잖아."- 맞아. 나도 연민은 재수 없다. 불쌍하다느니 이런 말도 재수 없어.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마지막 문단을 읽을 때 소름이 돋았다. 그러게 이게 편지였구나. 저런 남편이라면 나도 갖고 싶다. 나도 절망을 많이 쌓아뒀는데.옥상이라는 공간이 뛰어내리고 싶은 공간에서 소환을 하게 되면서 희망을 주는 공간이 되었다가,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공간이 되어서 참 좋았다. 옥상이라는 공간이 절망의 공간이었다가, 마지막에는 희망의 공간이 된다. 마지막의 옥상에서 만나자는 말이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책의 해설에 이 부분이 인상깊었다. <옥상에서 만나요>처럼 지옥같은 현실을 벗어나게 해줄 마법의 주문은 사실 없다. 그러니 발견해 달라고 하는 말은 결국엔 우리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혼자가 아니라 우리는 연결되었다고 작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제일 좋았던 단편은 <효진>과 <옥상에서 만나요>.
특히 <효진>은 진짜 곱씹게 되는 문장과 장면이 많았다. 거의 한페이지가 다 좋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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