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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나온 드라마 중 최고 : <잔혹한 인턴>, 1~4화 드라마 분석 후기
    드라마 후기 2023. 8. 19. 19:27

    티빙은 원래 안 봤는데 이것 때문에 결제했잖아. 라미란 배우랑 엄지원 배우는 정말 믿고 보는 배우이다. 왜냐, 이 두 배우가 나오는 작품들은 거의 다 재미있거든. 라미란 배우 나오는  <나쁜 엄마>는 초반에 재미있었고, <정직한 후보> 영화도 너무 좋다. 그리고 엄지원 배우가 나오는 건 <봄이 오나 봄>부터 <산후조리원>까지 다 재미있었다. <방법>도 너무 보고 싶어. 두 배우 모두 재미있는 여성서사에 자주 나온다.

     

    이 드라마가 특히 재미있는 것은 배우도 배우이지만 연출, 대사, 엔딩 등 드라마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이다. 최근에 시나리오 작법서를 한 권 읽어서 더 재미있게 드라마를 본 것 같다. 구성을 너무 잘만든 드라마이다.

     

    고해라 역의 라미란 배우

    고해라(라미란 배우)는 7년의 경력 단절 이후 다시 취업에 도전한다. 사회생활도 일도 잘했지만 일을 그만두고 다시 면접을 보자 줄줄이 낙방한다. 나이도 있고, 7년이란 경력 단절의 공백을 넘기 어렵다. 그런데 마켓하우스란 기업의 면접을 보러 가서 면접관인 최지원(엄지원 배우)을 만난다. 과거에 본인과 입사 동기였던 최지원이 이제 면접관으로 자신의 앞에 서 있다. 이때 고해라는 절박한 마음에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무슨 부당한 일이라도 할 것이라 말한다. 이 말을 주의깊게 들은 최지원은 고해라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를 쓸 여자 직원들을 휴직이 아닌, 퇴사를 하게 만들라고 말한다.

     

    이 드라마가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일을 제안하는 사람도 여자(엄지원 배우)고 제안을 받은 사람도 여자(라미란 배우)이다. 게다가 퇴사를 했으면 하는 직원들도 여자들(김혜화 배우, 이채은 배우)이다. 가부장제 안에서는 여자와 여자끼리 싸우게 되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잘 만든 여성서사에서는 주요 인물들이 여자들로 가득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보았다. 애엄마인 고해라가 같은 워킹맘을 물러나게 해서 자리를 차지해야 된다는 아이러니함도 보인다. 또한 조금 전에 고해라는 워킹맘들과 더 친해지고 있었다. 같은 워킹맘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친분을 쌓을려고 하는 와중에 최지원에게 그런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제안을 받게 되는 타이밍이 적절하다고 감탄했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다보면 사실 해라와 지원을 서로 반대된 생각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해라는 워킹맘을 미워했고 지원은 그들을 챙겼었다. 이런 아이러니가 극을 더 재미있게 만든다.

     

    또 드라마를 보면서 캐릭터의 성격과 캐릭터들간의 관계를 한 번에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바로 위의 회식 자리에서는 오른쪽에 앉음 김원해 배우가 회사의 이사이다. 오른쪽의 두 명이 최지원과 이름이 기억 안나는 남자이다. 이 남자는 이사의 말이면 뭐든지 옳다고 따르는 쪽이다. 이때 이사는 마켓하우스의 경쟁업체인 온정의 논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온정은 여자직원들에게 임신포기각서를 쓰게 만들었다고 들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이때 위의 남자는 생각없이 이제 온정은 망했다고 말하지만, 이사는 최지원에게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최지원은 그래서 업계 1위에서 쉽게 내려오진 않을 거라 말한다. 성추행이나 남자를 뽑기 위해 여자 직원을 일부러 탈락시킨 여러 회사들은 논란이 있어도 한순간 일뿐인 현실을 잘 반영하였다고 생각되었다. 이사는 최지원의 대답에 감탄한다. 남자는 떨떠름해 하고. 그리고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라고 이사가 말문을 열자 또 이 남자가 성급하게 시대를 따라 가지 못한다고 온정을 탓한다. 그러자 이사는 티 안나게 해야지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너무 웃겼다. 마켓하우스도 별반 다르지 않은 회사라는 게 보여지고, 또 매우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출산이나 육아로 휴직하는 직원들을 티 안나게 자르기를 자연스럽게 최지원에게 시킨다.

     

    중요한 것은 이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직원을 챙기려는 것이 계속해서 보여진다. 누가봐도 최지원 실장이 일을 더 잘하지만 당연히 남자 직원을 더 챙기는 남자 상사들을 자주 보았다. 드라마는 그런 부분까지 현실적으로 잘 보여준다.

     

    3화 엔딩이 진짜 잘 만들었다고 생각되었는데, 결국 임신한 여자 직원 한 명이 퇴사를 한다. 그 이후 해라는 죄책감에 고민을 하다 맨 왼쪽의 금과장(김혜화 배우)이 아예 육아휴직을 안 쓰면 다 없던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말리고자 달려가는데, 그 사이 금과장은 최지원을 만나 3개월 뒤 쓰기로 한 육아휴직은 바로 쓰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타이밍이 어긋나야 되는구나..하고 감탄했다. 4화에서는 해라는 금과장을 계속해서 설득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다 포기한 상태로 출근하는데 금과장이 나타나 말한다. 휴직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이렇게 다 포기한 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구나.. <잔혹한 인턴>은 드라마 시나리오는 이렇게 써야 하는 구나 배우기 딱 좋은 드라마 같다. 지금 교과서처럼 보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있다.

     

    특히 이 금과장과 고해라의 대화가 좋았다. 해라는 사실 육아에서 도망쳐서 일에만 파묻혀 살았었다. 애 때문에 자신의 커리어가 무너지는 게 억울해서 아이보다는 일을 택했다. 나중에 일을 관두고 난 후에는 아이의 학교를 쫓아다니며 열심히 에너지를 쏟았다. 하지만 이것도 도망이었다. 일하고 싶은 본심으로부터 도망을 간 것이다. 이런 대사가 너무 공감되었다. 나는 애도 안낳고 애 때문에 일을 관둔 것도 아닌지만 본심으로부터의 도망은 누구나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일을 그만둔 많은 엄마들이 사실은 관두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을까? 사실 그래서 여러 가정이 불행한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다들 가족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사니까. 아이는 일하는 부모와 애착을 잘 형성하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기로 택한 여자들은 그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적은 아빠들은 가족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그래서 결론은 이런건 다 돈이면 해결되는 것 같고. 그냥 결혼 안하고 애를 안 낳는게 최고인 것 같고...

     

    어쨋든 내가 조금 나이를 먹고 이런 드라마를 보니까. 이제 십대 친구들에게 많이 공감하지 못하는 나를 보았다. 해라의 중2 딸은 아무리 봐도 중이병 같고. 역시 어린 친구들은 화장을 해도 애기같고 안 한게 더 예쁘다. 내가 이렇게 꼰대가 되는 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나이에는 그런거겠지. 나도 그랬던 것 같은데 창피한 기억이라 다 잊은 거겠지. 하지만 해라와 딸의 다툼에서는 아빠의 선택이 옳은 것 같았다. 최근에 <시선으로부터>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고 있는데 가장 생각나는 내용이 있다. 아이가 하고 싶은게 있다면 그냥 꿈을 꾸고 도전해 보도록 하라고 한다.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그때 하면 나중에 실패하고 포기할 수도 있는데. 어중간하게 포기도 못하고 안고 살면 나중에 나이 먹어도 계속 생각나고 두고두고 억울할 거라고. 그래서 철없는 아빠인 줄 알았는데 해라의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겼다. 이 드라마는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다 공감이 간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인물들이고 나하고도 닮은 인물들이 많다. 그래서 드라마도 설득력 있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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