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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독서일기 2 <딸에 대하여>, <보건교사 안은영>
    독서 일기 2023. 11. 23. 10:14

     

    딸에 대하여

    11/21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 하게 막고 있다고는 생각 안 해?"

    이 문장이 책의 핵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의 마음에 더 공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자는 누군가의 딸이고 남들과 같은 사람이다. 책은 일부러 혐오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이 중년의 여성은 편견도 많고 마음 속으로 남들을 평가하고는 한다. 그래서 더 지극히 현실적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는 게 좋았다. 작가가 얼마나 똑똑한지 감탄만 나온다.

    "어떤 말들은 곧장 내 안으로 들어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것들은 육중하고 거대한 방파제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그때부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끝내 소화되지 않는 말들. 소화할 수 없는 말들.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말들."

    "세상일이라니. 자신과 무관한 일은 죄대 세상일이고 그래서 안 보이는 데로 치워 버리면 그만이라는 그 말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 그 자식들이 그들의 자식들에게 또 그렇게 말하게 되겠지. 그런 식으로 세상일이라고 멀리 치워 버릴 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둘씩 만들어지는 거겠지. 한두 사람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크고 단단하고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뭔가가 만들어지는 거겠지."

    사실 엄마는 동성애자가 부딪히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왜냐 하면, 젠이 요양원에서 점점 안 좋은 대우를 받을 때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 늙고 병든 노인이 자기 의사를 밝힐 수 없으니까 아무렇게나 대하는 것에 분노하기 때문이다. 다들 세상일이 다 그렇다고 넘긴다.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도 지금 동성애자가 맞아 죽는 것도 그냥 넘긴다.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한다.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든 예민하게 알아채고, 알게 된 것을 말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다. 뭐든 모른척하고 침묵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겨지는 이 나라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라고 이렇게 늙어 버렸다."

    사람들은 차별과 혐오를 알아내고 느끼고 멈추라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모른척하지 않고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시위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차별과 혐오는 안 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엄마가 요양 보호사로 일하면서 그 불편함을 깨닫는 인물로 만들었다. 결국 엄마의 입을 통해 해야 할 말을 다 전달했다. 진짜.. 작가의 역량에 놀랄 수밖에 없다.

    "마음은 왜 항상 까치발을 하고 두려움이 오는 쪽을 향해 서 있는 걸까."

    엄마는 항상 자신의 죄라고 생각한다. 딸이 동성애자가 된 것도 본인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다. 우리 엄마는 내가 힘들어 하거나, 아파하면 미안해 한다. 괜히 낳아서 아픈 것같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다 알잖아. 어쩜 이럴 수는 없어."

    "우리라고 뭐 다를 거 같아? 우린 영원히 저런 침대에 안 누워도 될 거 같아?"

    "그러니까 이건 세상의 일이 아니고 바로 내 일이다."

    "이런 말이 내 안의 어딘가에 있었다는 게 놀랍다. 그런 말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죽을 때가지 드러나지 않는 게 아니라, 마침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렇게 말이 되어 나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세상의 문제들은 세상의 일이 아니고 바로 내 일이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누군가 목소리를 낼 때 새댁처럼 사실 그게 맞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사나운 말들이 더 사나운 말들을 불러 모은다."

    "내 피와 살 속에서 생겨나고 자라난 저 애는 어쩌면 나로부터 가장 먼 사람일지도 모른다."

    "젠이 목소리를 낮추면 곁에 앉아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을 밤새 소곤거릴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나는 간신히 삼킨다. 내 잘못이 아니지. 너의 잘못이 아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의 수많은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할까."

    "이 애들에게 보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조용히 침묵하라고 명령하고, 죽은 듯 지내거나 죽어 버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편에 내가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애들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서 있어야 할까."

    시위를 바라보며 엄마는 자꾸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서 있어야 할지 고민한다. 경계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경계가 이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내가 각오하고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11/22

    "놀랍게도 젠의 두 눈이 분명히 나를 향한다. 이런 순간엔 기억을 잃고 죽음 근처를 서성이는 늙고 병든 환자가 아니라 길고 긴 삶을 용감하게 건너온 사람 같다."

    "하지만 내 말은 늘 거기에서 멈춘다. 내뱉을 수 없는 말들, 결코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말들. 내부에 남은 말들이 덜그럭거리고 부딪히며 상처를 내는 것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 

    11/22

    저번에 대충 메모하면서 읽었는데, 지금 그 메모들 다시 보니까 <시선으로부터>랑 섞여가지고 뭐가 뭔지... 그래서 대충 읽으면서 정리해볼려고 했는데 첫 페이지부터 좋아서. 그냥 하나씩 천천히 정리해볼려고.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으려고 버르고 버르고 있다가. 결구 미루고 미루다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다. 적당히 잘 각색한 것 같다. 원작을 살리면서 성별정도만 조금 바꾸고 대부분 남자에서 여자로 바꾼 듯. 그래서 더 많은 여자캐릭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원래는 에피소드에 나오는 학생들이 다 같은 해에 학교에 다닌 것이 아닌데 합쳐서 동갑으로 만들어 버린게 탁월한 선택이다. 그리고 드라마가 액션이나 감정이 더 크게 터지게 잘 만든 것 같다.

     

    민음사의 저 표지들은 다 재미있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도서관에 주루룩 꽂혀 있는거 봤을 때, 진짜 갖고 싶었다. 저 시리즈에서 <82년생 김지영>, <해가 지는 곳으로>를 읽었다.


    1. 사랑해 젤리피시

     

    아니. 이렇게 한 페이지가 다 좋아도 되냐고..


    "10대 소년이 느끼기엔 다소 짙은 절망, 그 절망의 단내가 입안에 돌았다."

    "죽은 것들은 의외로 잘 뭉치지 않는다. 산 것들이 문제다."

    "아니, 아니다. 해가 갈수록 더 느끼는 점이지만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고르는 것 같다."

    그니까 이런 문장들이 너무 좋다.

    "저 즐거워 보이는 생물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안으로 삼키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아무도 모를 거라고 승권은 다시금 확신했다."

    "고등학생이면 벌써 다 큰 것 같지만 그래도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어른들을 그만큼 잘 믿기도 힘들다."

     


    인표는 진지하고 은영은 그냥 아무렇게나 대답하는데, 이러한 관계가 너무 재미있다. 드라마가 이런 관계를 특히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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