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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분석] 직립 보행의 역사
    드라마 후기 2024. 9. 14. 19:08

     


    TVN 단막극은 티빙에서 다시 볼 수 있어 너무 좋다. 최근엔 <물비늘>을 다시 보았지. 그리고 <직립 보행의 역사>도 생각나서 다시 보았다. 2017년에 방영될 때 본 것 같은데. 그때는 그냥 로맨스물로 재미있게 봤지만, 지금은 시나리오 공부를 했으니까. 이 드라마는 무슨 내용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주제가 뭘까? 고민을 하며 봤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기 십분 전쯤 주인공들이 막 울며 다투는 클라이맥스에 주제가 툭 튀어나왔다.

     

    사실 사랑이야기는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야기이고. 그런데 사랑이야기에 주제가 뭐가 있지?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냥 좋아하는 애들 둘이 나와서 서로 좋아하는데 고백 못하고, 삽질 좀 하면서 분량 채우고(바로 이어지면 재미없으니까) 이어지기 전까지 갈등 있고 사귀면 다들 흥미 잃어서 데이트는 그냥 몽타주로 짧게 보여주고. 가장 행복할 때에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일어나서 헤어지고, 또 그렇게 회차 채우다가 마지막화쯤에 다시 만나는 건데. 그냥 재미로 보는건 줄 알았는데, 지금 돌아보니 나름 주제가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사랑하면 재지 말고 사랑을 표현하기/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기/제대로 된 이별은 무엇이다~ 뭐 이런 주제들이 있는 것 같다.

     

    TVN 단막극은 여기서 (https://open.cjenm.com/ko/achieve_download/) 대본을 볼 수 있다. 대본을 보니 원래부터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은 미나가 아니었던 것 같다. 강미나 배우가 2017년 당시 아이오아이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배우의 이름을 살린 것 같다. 사실 이 드라마는 이름이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드라마 분석글 두 개가 모두 주인공 이름이 미나가 되었네. 그리고 변우석 배우가 등장하는데 최근에 <선재 업고 튀어>로 크게 인기를 얻어서 과거 단막극도 찾아보는 팬들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선재는 재미없어서(취향에 맞지 않는 듯),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 배우가 최근에 유명해져서 찾아보니 직립 보행에 나왔었더라고 그런데 배우의 얼굴이 기억에 남지 않았다.


    먼저 <직립 보행의 역사> 줄거리를 보자. 주인공 미나는 오래전부터 짝사랑하는 선배 종민이 사실 같은 반 친구인 자연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종민은 지연에게 고백을 하고 둘은 사귀게 되는데, 미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종민을 좋아했기에 이 마음을 포기할 수 없다. 둘 사이를 갈라놓기로 결심한다.

    드라마 주제부터 밝히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먼저 오펜 작품집에서 최성욱 작가가 밝힌 작의(주제+기획의도라고 보면 된다)를 보면 어른의 자격 요건에는 '회피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미나는 열일곱 살인데. 아직 미성년자인데 어른이라고? 그게 아니라, 미나가 사랑의 쓴 맛을 겪으며 인생의 배우고 성장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드라마이다.

    미나에게는 특별한 초능력이 있다. 여기부터 작가는 모든 것을 계산한 것이다. 미나의 초능력은 하루에 두 번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초능력이 너무 좋았다. 첫 번째 일단 재미가 있고 두 번째로 이 초능력을 어떻게 이용해서 종민과 자연의 사이를 갈라놓을지 궁금하고, 세 번째로 주제를 잘 표현하는 초능력이었다. 미나는 열일곱이 되도록 자기가 무엇을 선택하고 도전해보지 못한 인물이다. 공부도 그럭저럭, 교유관계도 그럭저럭. 자기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은 투명인간이 되어서 회피하는 인물이었다. 미나의 성격을 보여주는 능력인 것(회피하기)이다. 첫 등장부터 미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싫어서 투명인간이 되어 도망간다. 이 장면으로 미나란 캐릭터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면 결말에는 미나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며 미나의 변화를 보여준다. 겨우 음식물 쓰레기 버린다고 성장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작가가 미나란 캐릭터를 설명하고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드라마의 시작과 끝에 넣은 장면이다.

     


    미나는 종민과 어렸을 때부터 친한 사이였다. 서로의 집에도 놀려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지만, 미나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던 사이 종민은 미나의 같은 반 친구한테 고백을 하고 둘은 사귀게 된다. 미나는 초능력을 사용해 둘 사이를 갈라놓을려고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결국 미나와 종민은 말싸움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종민의 대사로 드라마의 주제가 나온다. 앞에 이야기한 클라이맥스가 바로 이 부분이다. 종민은 미나와 싸우면서 넌 항상 그런 식이다, 싫은 건 하나도 안하고 불편한 건 다 피한다고 말한다. 둘이 싸우다가 이런 대사가 나와서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은 했다. 사실 드라마의 주제를 위해 조금은 억지로 넣은 대사같다. 결국엔 미나는 도망가지 않고 종민에게 고백을 하며 끝난다. 미나가 회피하지 않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결말은 단막극의 재미처럼 열린 결말. 단막극은 항상 결말을 관객들의 상상에 맡기는 것 같다.

     

    사랑이야기의 탈을 쓴 성장이야기라서 재미있었다. 미나란 캐릭터가 도망만 가는 캐릭터임에도 밉지 않고, 밝은 캐릭터라 좋았다. 또 내 남자를 뺏어간 자연과 다투는 이야기가 아니라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도 좋았다. 내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가 악녀도 아니고, 자연이 착한 아이인 것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기적이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못난 면도 있는 주인공이 여러 사건을 거치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한 가지를 배우는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어서 특히 좋았던 작품이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목에 큰 의미가 숨겨져 있다. 바로 직립 보행. 17년도에 봤을 때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런데 주인공 미나는 항상 보드를 타고, 초능력을 쓸 때면 얼굴을 찌푸리고 쭈그려 앉아야지 투명인간이 된다. 그렇게 투명인간이 된 미나는 보드를 타고 몰래 이동한다. 그런데 이제 미나는 회피하기를 멈추고 두 발로 땅을 걷기로 하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인간의 진화과정을 거쳐 두 발로 걷기 시작한 것과 흡사하다. 걸음마를 배워서 두 발로 걷기 시작한 것처럼 미나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그린 드라마였다. 드라마 제목부터, 주제, 캐릭터와 갈등까지 구성이 완벽한 드라마라 보는 동안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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