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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새 / 여성 서사 / 여성 감독 / 성장 영화 / 한국 영화 / 스포 있음
    영화 후기 2019. 9. 8. 19:53

    마음에 드는 포스터들. 3가지의 포스터가 다 다른 느낌이지만 영화에 잘 어울린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

    - 한국의 모든 여성.

    - 한국의 모든 가족.

    - <레이디 버드>를 감명 있게 보신 분들.

     

     개봉 전부터 알던 영화이다. 이미 개봉한 영화인 줄 알았다. 여기저기에서 상을 받고 영화제에서 계속 상영했다고 알고 있다. 독립영화들은 개봉이 오래 걸리는 듯하다.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기에 개봉하자마자 보았다. 생각보다 엄청 재미있지는 않았고 그렇게 슬프진 않은데 계속 눈물이 났다. 저 나이 때의 그 감정들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서 눈물이 났다. 영화의 초반은 좀 의문이 많았다. 이야기의 전개도 캐릭터도 이해하는데 좀 걸렸다. 영화관이 아니라 왓챠 플레이나 텔레비전에서 봤으면 보다가 넘길 것 같은 영화였다. 다른 영화처럼 큰 사건 하나가 있어서 그 일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영화를 알았어도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던 것 같다. 이렇다 할 줄거리가 없다. 그냥 중학생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좋았던 대사는 사실 초반에 나왔다. 주인공 은희(박지후)의 친구, 지숙(박서윤)이 한 말이 정말 중요하다. 그 여름에 부는 바람과 담벼락에 기대서 둘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좋았다. 지숙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 "그런데 우리한테 미안해하기는 할까?"라는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그때 이 영화 괜찮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의미이다.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들은 어머니,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딸을 포기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죽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죽어봤자 가족들이 미안해하지도 않고 오빠를 나무라지도 않을 텐데라고 생각할 때 지숙이 말해버렸다. "그런데 우리한테 미안해하기는 할까?"

     

     은희의 가족을 보면서 줄곧 생각했다. 전형적인 한국의 가부장적인 집안이라고 생각했다. 저런 집안은 많을 것이다. 모든 인물은 악의는 없다. 은희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착하고 악의 없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래서 은희 때문에 아버지가 울 때는 웃겼다. 왜 울까? 영화가 끝나고 GV에서 아버지와 오빠의 눈물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은희에게 흉터가 남아서 운 게 아닐까 싶다. '여자아이'가 흉터가 남을까 봐 수술을 하는 게 걱정된다기보다는 그런 마음이 더 컷을 것 같다. 오빠가 운 것은 가족들보다 타인이 더 마음 아팠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를 겪은 우리는 한 번쯤 세월호로 울어본 적이 있다. 그러니 그 마음은 충분히 공감되지만 그래도 동생에게는 폭력을 가하면서 죽음에 슬퍼한 줄 안다는 것이 모순되었다. 이러한 모순을 영화는 잘 짚어내었다. 너무 현실적이고 너무 우리와 비슷한 이야기라 이 괴리감을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은희의 시선에서 부부싸움 후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는 부모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더 이 괴리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러한 가정은 은희의 옆집에도 우리의 옆집에도 많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가정들은 다 이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은희의 아버지가 뒷담화하는 장면도 기억난다. 누군가를 욕하면서 자신이 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가족에게 이야기한다. 아무도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고 듣지 않고 있는데도 큰 목소리로 열변을 토한다. 그러나 또 그 말을 멈추기는 어렵다. 그게 가부장적인 집안의 흔한 모습이다. 한국인들이라면 한 번쯤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절 때면, 지하철을 타면 저런 아저씨는 자주 보인다.

     

     이 지독히도 현실적인 다양한 에피소드 사이에 비현실적인 존재가 하나 있다. 김새벽 배우가 연기한 영지 선생님은 정말 좋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혹시 상상 속 인물은 아닐까 걱정할 만큼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신비한 매력이 있다. 이런 선생님은 은희가 만나서 너무 다행이다. 모두가 영지 선생님 같은 사람을 인생에 한 번쯤은 만난다면 좋을 것이다. 특히 비현실적이다고 생각한 이유는 예상할 수 없는 행동과 대사를 한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그런데 정말 위로가 된다.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사람들을 마음대로 불쌍해하지 말라는 대사가 너무 좋았다. 너무 공감되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다. 누군가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 영지 선생님의 말처럼 은희가 맞서 싸우는 것은 영지 선생님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또 은희가 만난 또 다른 어른 의사 선생님도 좋았다. 그렇게 친절하지 않고 담백하게 어린아이를 배려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진단서를 끊어줄까 물어볼 때는 제발 진단서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소리쳤다.

     

     사실 은희는 정말 조용하다. 대사도 없고 표정도 위의 사진과 같은 얼굴일 때가 많다.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주인공을 원했다면 이 영화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조용히 혼자서 곪는다. 은희가 조용히 침묵을 유지할 때 마음속으로 은희의 대사를 생각하고는 했다. 은희가 이렇게 말했으면 하면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영화의 전개가 더 좋았다. 은희와 남자친구의 관계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이거는 연애감정 자체를 이해 못해서 그런 거 같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정말 매력 없었다. 그런데 은희는 딱히 그 아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본인을 좋아해 주는 상대가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러니 사실 성별이 중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은희에게는 그런 상대가 특히나 부족했다.

     

     호흡이 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병원 장면은 생각보다 짧았는데 병원 아줌마들이 정말 웃겼다. 오히려 병원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은희 언니의 남자친구가 몰래 들어와서 은희의 상태를 보는 장면도 좋았다. 은희는 그 걱정이 좋았을 것이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수희(은희 언니, 박수연 배우)의 남자친구도 고등학생인데 몰래 운전한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희의 남자친구는 얼굴이 잘 안 나와서 얼굴을 못 외웠는데 갑자기 누가 운전을 해서 남자친구인가, 미성년자 아닌가 했는데 그런 설정이 숨어 있었다. 이렇게 조금은 특이한 셋의 조합으로 가족들 몰래 성수대교를 보러 간다. 이 장면도 좋았다. 성수대교를 바라보는 장면은 정말 대단하다. CG도 대단하지만 그 말 없이 바라보는 얼굴도 좋았다.

     

     뭔가 생각할수록 더 좋은 영화이다. 장면 장면들이 다 좋고 하나도 빼놓을게 없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은희 언니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어 아쉬웠다. 더 많은 장면이 보고 싶은 이야기였다. 시간이 지나 은희의 엄마가 은희의 말에 대답하지 않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는 엄마가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 끝에 무슨 사건이 벌어진 줄 알았다. 곧 어떤 일이 휘몰아치겠구나 했는데 그 장면은 거기서 끝난 거였다. 엄마는 항상 엄마이지 않았다. 은희는 엄마가 너무 필요하지만 엄마는 지쳤다. 여자 아이의 목소리에 딸을 둔 모든 엄마가 반응하지는 않는다. 은희의 마음도 엄마도 이해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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