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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독서 일기 <사하맨션>, <소년이 온다>
    독서 일기 2024. 2. 20. 16:46

     

    사하맨션

    2/1

    "매번 다른 연구원들이 나왔는데 그들의 가운에는 이름표가 모두 뜯겨 나가 있다. 친절하고 예의바른 거리감."

    "아기도 마음을 쓰고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을 때 보챈다."

    2/19

    "우미는 자신의 몸이 이정표가 되기 위해 뜯기고 버려지는 빵 같았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뜯어내다 보면 내 몸에는 뭐가 남을까."

    "원래 그렇다고 알고 살았던 사람이 '원래'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미도 그랬다."

    "생존자니까."
    "우리는 다 살아 있잖아요."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서 살아남았으니까요."

    우미 이야기 나올 때부턴 SF영화 보는 거 같네. 갑자기 장르가 바꼈다. 이상한 연구소는 <기묘한 이야기>도 생각난다.

    "우미는 맹수를 키운 힘이 분노가 아니라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우미는 분노가 아니라 외로움이 더 컸겠구나.

    "당신이 안쓰러워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마음이 사람을 움직이죠. 신념은, 그 자체로는 힘이 없더라고요."

    수많은 이야기에서도 어떤 억압과 차별을 겪는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등장할 때, 어떤 대의나 신념이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을 겪는 사람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마음을 가지면 돕게 되는 것 같다. 우미를 돕기로 한 사람은 우미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는 않았지만, 우미를 가까이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더 그런 마음이 생긴 것이다. 만약, 글로만 우미의 삶을 알았다면 이렇게 용기내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이 문장이 인상깊다.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시위하는 장애인들에게 미워하는 마음이 왜 드는지 알거 같다. 먼 세계 이야기같으니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마음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 씨앗들은 어디서 날아온 걸까? 우미는 그 시절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던지고 깨뜨렸던 열매들.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하고,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숱한 바람과 비와 눈을 견디며 떠돌다 다시 우미에게 돌아왔다."

    우미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하고,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고 있을 것이다.

    "플라타너스 씨앗의 솜털이 들어간 것처럼 눈이 따가워지더니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2/20

    "성장의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늙었다. 늙고 나약해졌다."

    "너희들, 왜 '너'가 아니고 '너희들'이었을까."

    우미는 영감의 말처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처럼 자기를 버릴듯이 행동했다. 칼을 들어 상대방과 싸우는 게 아니라, 칼을 자신에게 대었다. 영감의 말이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미의 행동을 보고 이해했다.

    아니, 어떻게 태어나던 순간을 이렇게 자세히 묘사할 수 있지. 진짜 이럴 것 같은데? 그리고 우미는 어떻게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진경이 꿈을 꾼다. 잔가지들이 자신의 몸을 덮치는 꿈. 잔가지들에게 농락당하다 진경은 아예 이 나무의 뿌리를 뽑아버리기로 한다. 여기서 잔가지들은 사람들의 편견과 무심코 내뱉는 말들 같다. 하지만 뿌리를 찾아가면 다른 게 있겠지. 우리를 괴롭히는 잔가지만 쳐내는 게 아니라 뿌리를 뽑아야겠지. 그게 가부장제도 될 수 있고, 인종차별도 될 수 있고, 수많은 차별과 혐오 모든 것에 해당될 것이다. <사하맨션>은 결국 차별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조남주 작가의 글답다.

    결국 뿌리에는 진경의 다리가 있었다. 자기 자신을 양분 삼아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벗어나지 못하고 답답하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영감처럼 가슴을 쥐어뜯으며 진경은 우미를 생각하고 도경을 생각했다."

    "100개가 넘는 게단을 매일 오르내렸을 진경과 도경을 생각했다. 수를 생각했다."

    "영감은 계단을 오르며 진경의 마음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

    "진경의 명령 없이 움직인 도경의 첫 번째 발걸음은 수를 향했다. 이제까지 진경은 그 걸음의 의미와 무게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어쨌든 후회하지 않았길. 세상에는 단 한 걸음도 스스로 내딛지 못하고 끝나는 인생들이 더 많으니까."

    "이 길을 걸었을 우미를 생각했다. 꽃님이 할머니의 손에 매달린 다섯 살의 우미, 도망치고 싶은 열다섯 살의 우미, 어쩔 수 없는 스물다섯 살의 우미."

    "마음이 울컥거렸다. 그동안 애써 눌러 놓았던 감정들까지 한꺼번에 올라왔다. 분노만큼 커진 무력감과 그에 따른 죄책감, 의문과 피로가 몸을 겹겹이 감싸 고치에 갇힌 것처럼 감정들 안에 갇혔다."

    "진경은 도경을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우미를 보았다."

    "진경은 누구 얘기를 하는 거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두 생명의 가치를 저울질하고 있는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진경의 머릿속에서 폭풍이 일었다."

    "왕자는 어쩌면 두 사람이 오래오래 행복했다는 결말보다 공주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결말을 더 원했을지도 모른다."

    "남학생 하나만 정류장 팻말을 짚고 섰다.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린 여학생이 자연스럽게 그의 곁으로 갔다. 둘은 무리와 떨어져 걸었다. 손을 잡지도 않았고, 얘기를 나누지도 않았고, 몇 번 얼굴을 마주 보지도 않았다. 그저 앞을 보며 나란히 걸어갔다."

    "빛나는 벚나무 터널을 지나는 어린 연인. 꽃이 지고 열매가 떨어진 여름의 벚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봄이 아련한 줄 몰랐고 여름이 반짝이는 줄 몰랐다. 가을이 따사로운 줄 몰랐고 겨울이 은은한 줄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 이렇게는, 살았다고 할 수 없겠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겠지."

    이 소설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이 나올 줄 몰랐다. 갑자기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다니. 아름답고 슬프다.

    "진경은 왠지 두려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 없었어. 따라가도 없었어. 그러니까 항상 진짜가 어디 있을지 생각해야 해."

    영감은 정말 뭘 알고 있는 것일까. 우미한테 칼을 준 것도 그렇고. 그런데 거기 없다니. 진경이 또 영감이 한 말을 되뇌인다.

    "철컥하며 쇠들이 부딪쳤다. 진경의 마음속에서도 철컥하고 무언가가 엇갈렸다."

    "소장이 사무실 가운데 놓인 소파에 몸과 마음의 무게를 모두 내려놓으며 앉자 푸욱 하고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진경의 굳은 마음과 단단한 믿음에 실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눈물 너머로 아른거리는 환영 속에서 여자는 우미였다가 도경이었다가 진경 자신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계속 머뭇거렸다."

    "그냥 아주 커다란 비밀을 하나 알고 있을 뿐이야. 알고 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비밀."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

    이런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가야 할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제자리를 지키며 끝날까? 아무래도 이런 체제를 없애려는 사람이 나타나겠지. 그리고 그 사람은 주인공이겠지. 진경은 어떤 신념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마음으로 움직였다.

     

    "이 소설은 미래를 바꾸게 될 한 여성 전사의 탄생에 관한 긴 쿠키영상이다."

    "설레지 않는가."


    이 소설은 타운의 비밀도 사하맨션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 알려주지 않았다. 2권도 있으면 좋겠다. 조남주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좋다. 그 이후의 진경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마음이 아프고 또 설렌다.

     


    소년이 온다

    2/1

    "처음 누나들을 만났을 때 네가 한 말 중 사실이 아닌게 있었다."

    "아저씨가 네 눈에서 손을 뗀 순간, 마치 거대한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맞은편 골목의 남자 둘이 쓰러진 젊은 여자를 향해 달려가 팔을 잡고 일으키는 것을 너는 봤다."

    "더이상 아무도 쓰러진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다."

    쓰러진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총에 맞고 쓰러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눈 앞에서 쓰러진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총을 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음에도 사람들은 여러번이나 달려갔다.

    "꿈보다 무서운 생시가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채 정대의 방에선 당연히 누구의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이 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너는 금세 알아들었다. 차갑고 부드러운 헝겊으로 겹겹이 감싼 것 같은 손끝으로, 뭔가를 겁내는 듯 조용히 두드리는 소리. 얼른 문을 열고 나간 너에게 그녀는 물었따."

    "얼굴에서 무슨 풀꽃 같은 게 연달아 피어나는 것처럼 눈웃음을 짓는 그녀의 얼굴을 너는 멍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건 아주 흔한 물방울무늬 치마가 아닌가?"

    "정미 누나의 머리카락이 저렇게 짧았던가? 저런 단발은 진짜 여중생만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너는 앞에서 정미 누나의 머리는 "짧다 싶은 단발머리"라고 했고 "뒤에서 보면 여중생"같다고도 했었다.

    "여름도 아닌데 뭣하러 발톱에 매니큐어을 발랐을까. 하지만 너는 그녀의 맨발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동호의 부정이 마음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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