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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독서 일기 2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소년이 온다>, <그대는 할말을 어디다 두고 왔는가>
    독서 일기 2024. 3. 2. 17:45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2/20

    "그 시절의 자신은 너무도, 정말 너무도 무르고 착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신호탄이 필요했다. 경계에 닿을 듯 말 듯 찰랑이던 감정을 완전히 튀어오르게 할 자극이."

    "현경은 안쪽의 뭔가가 바스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2/21

    "이상한 날이다. 아파트 너머 산등성이로 지는 노을이 기괴하리만치 붉었다.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핏물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뭔가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올 것 같다. 슬슬 판타지 장르로 변하고 있다. 어차피 사람이 젤리로 변했는데.. 어차피 판타지였구나 ㅋㅋㅋ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죽음 같은 침묵이 현경을 반겼다."

    "계속된 도발에 눈이 붉게 충혈된 젤리빈이 어느 순간, 괴상한 소리를 내며 현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계획대로 착실하게."

    2/27

    "이 상황이 영화의 한 순간이었다면 벨소리는 분명 어떤 불행의 징조였으리라. 그러나 현경은 확신했다. 이것은 구원."

    "이 세상에 의미 없는 우연이란 없다."

    "팽팽한 창호지를 뚫는 것처럼 통쾌한 소리가 났다. 행진곡의 도입부에 울리는 북소리 같기도 했다. 현경에게는 그게 어떤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도 역시 경쾌한 소리가 났다."

    진짜 무섭다. 머리가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를 통쾌하고 경쾌한 소리라고 묘사하다니.. 현경한테는 그렇게 들린 거겠지. 조예은 작가의 소설은 이렇게 밝게 무섭다.


    소년이 온다

    2/27

    "그날 자정까지 사랑채에선 남매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나직하던 음성이 조금 높아지는가 싶으면 누군가가 다정히 달래고, 누군가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면 다른 누군가가 나직이 달래는 사이"

    남매가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가 느껴져서 슬프다.

    "너는 앞장서서 모서리의 사람을 향해 걷는다. 거대한 자석 같은 게 힘껏 밀어내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네 몸이 뒷걸음질 치려 한다. 그걸 이기려고 어깨를 앞으로 수그리고 걷는다."

    "달아났을 거다,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이 문장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를 악물며 눈물을 참았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저세상에서 만나자는 말 따윈 의미없는 거였어."

    "시시각각 저녁이 오고 있었어."

    "그러니까 혼이란 건 가까이 있는 혼들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면서, 누군가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만은 온 힘으로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거였어."

    "더 무서워진 건 다음 순간이었어. 두려움을 견디며 나는 누나를 생각했어."

    "깜박 잠들 수 있다면, 캄캄한 의식의 밑바닥으로 지금 곤두박질칠 수 있다면. 꿈속으로 숨을 수 있다면. 아니, 기억 속으로라도."

    "어리둥절해하는 네 얼굴을 향해, 자랑도 슬픔도 부끄러움도 아닌 누나 이야기를 꺼낸 순간."

     


    "누나가 두번 쓰다듬어준 내 얼굴. 누나가 사랑한 내 눈 감은 얼굴."

    정대가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다고 했었는데. 누나가 사랑한 얼굴은 정대의 눈 감은 얼굴이었구나.

    2/28

    "누나, 온 세상이 어항이야. 모를 내기 직전의 맑은 논물에 하늘이 끝없이 비쳐 있었지."

    "국화빵 봉지를 스웨터 속 왼쪽 가슴에 품고 누나가 기다리는 집으로 달렸지. 두 발은 얼어서 아무 감각이 없었지, 심장만 활활 타는 것 같았지."

    정대가 생각하는 기억들이 다 너무 따뜻해서 더 마음이 아프다.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서 선생의 손이 날렵하게 가제본을 들어올린다. 그것이 젖지 않도록. 그 지워진 책 속에 아직 무엇이 남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사과처럼 볼이 붉기를, 반짝이는 삶의 기쁨이 예쁘장한 볼우물에 고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빨리 늙기를 원했다. 빌어먹을 생명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결국 그 앳된 학생들의 스크럼 속으로 걸어들어갔을 것이다. 가능한 한 끝까지 그 속에서 버텼을 것이다. 혼자 살아남을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살아남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
    "아니, 도청을 나오기 전 너를 봤을 때 이미 부서졌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기억을 안고 살기 힘들어서, 죽은 이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 스크럼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살아남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2/29

    "거대한 풍선 같은 침묵이 병실의 모서리들을 향해 부풀어오르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마침내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귀를 틀어막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고개를 젓지도, 신음하지도 않았다. 다만 너를 기억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

    그래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이어서 먹선으로 지워진 넉줄의 문장들을 그녀는 기억했다."

    검열과에서 삭제한 대사들을 말할 수 없어서 연기를 하는 여자는 그 대사들을 입모양으로만 말한 것일까?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고개를 뒤로 꺾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의 입술이 자신도 모르게 달싹인다. 배우들을 흉내 내듯 목구멍을 쓰지 않고 부른다. 동호야."

    "색색의 만장들이 일제히 무대 천장에서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만장은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이라고 한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아니요, 나도 잠을 못 잡니다. 하루도 깊이 못 잡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그럴 겁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왜 그는 죽었고, 아직 나는 살아 있는지."

    "죽음을 심리적으로 부검하고 있다는 선생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와 나의 경험이 비슷했을지 모르지만, 결코 동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혼자서 겪은 일들을 그 자신에게서 듣지 않는 한, 어떻게 그의 죽음이 부검될 수 있습니까?"

    "김진수가 자신의 총을 챙겨 굳은 얼굴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 너는 돌아오지 말아라."

    "지도부를 이끌었던 대변인이 전날 외신기자들을 만나 했다는 말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패배할 거라고 그는 말했다지요. 반드시 죽을 것이며,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지요."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산산조각나 흩어졌습니다."

     

    정말 읽기 힘들다. 동호의 이야기에서 동호의 친구 정대의 이야기로, 점점 이야기가 퍼져나간다. 그런데 이들은 다 어떻게든 얽혀 있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고, 나와 다를바가 없다.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2/29

    오늘 다 읽었다. 산문집이라 술술 읽혔다. 사실 허수경 시인을 잘 몰라서 모르는 체 읽었다. 일기장 같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에 박준 시인이 허수경 선배에게라며 허수경 시인이 글 쓴 방식과 똑같이 발문을 썼더라. 여기에서 사랑이 가득 느껴졌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허수경 시인의 편지도 있다. 직접 쓴 손글씨로 편지를 볼 수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편지를 볼 때가 참 좋다. 예민하고 감수성이 높은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를 볼 때면 그 애정이 느껴져서 좋다.

    가끔 울컥하는 글들이 많았다. 분단국가이자 한국인의 정서를 가진 시인이 독일에서의 이야기를 할 때면 공감할 이야기가 많았다. 발굴 작업, 이방인, 전쟁과 관련된 글이 많았다.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시인이 되는 구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약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나도 뉴스 기사에서 전쟁으로 누가 죽었다고 하면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어서 남 걱정할 때가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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