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3월의 독서 일기 1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소년이 온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독서 일기 2024. 3. 10. 19:37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3/3

    어쩌다 보니 산문집을 연속으로 읽고 있네. <그대는 할말을 어디다 두고 왔는가>를 이어서 읽고 있는 책이다.

    "울면서도 나는 아내보다 더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는 무참해져서 이제부터 내 알량한 문학 공부는 슬픔에 대한 공붕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어즈 앤 이어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자신의 애인이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갔을때, 같이 긴장하던 주인공이 애인을 기다리다 잠에 드는 것이었다. 애인이 난민으로 인정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 하는 마음은 컸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일이 아니다. 졸음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너무 아파서 새벽 내내 잠을 못잤다. 엄마가 엄청 걱정을 했지만 엄마는 결국 새벽에 잠에 들었다. 이 두가지의 기억이 떠오른 문장이었다.

    "극장에서는 태연한 눈물을 흘리는 인간도 자신이 직접 행하는 악덕에는 무감각해질 수 있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

    "문학이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라는 말도 옳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앎' 그 자체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 두 저자가 연출자이고 작가이기 대문에 특별히 슬픔에 대해 연구했으리라. 모르는 것을 표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형철 작가가 읽은 최고의 에세이라는 <슬픔의 위안>은 메모해 둬야 겠다.

     

    ---------


    "계속 공부해야 한다. 누군가의 터널 속 어둠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도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의 강연에서 저자가 고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쓰여있는 글을 읽으며 주춤했다. 작가를 보며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더 예민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식민지라는 단어도 많이 쓴다. 읽다 보면, "슬픔의 식민지"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러다, <동주> 영화를 보고는 영화가 흑백으로 만든 것이 오히려 감정적인 거리감을 갖게 만들어 울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한, 마치 유적지에 다녀오면 기념품을 사듯이 윤동주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먼 과거의 이야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냐 하면, 작가가 고문이라는 단어는 조심하지만, 식민지라는 단어는 조심하지 않으니까.

    -----

    "사랑은 사회적 진공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사회적 권력관계가 사랑의 권력관계 속으로 삽입되기도 한다."

    나는 이 말이 공감되었다. 덜 사랑해도 되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는 것 같다. 거기서 더 나아가 사회적 권력관계가 영향을 많이 끼친다. 성별이나 경제적인 것으로도 권력이 형성된다고 느낀다. 덜 사랑해도 되는 쪽을 그러면서 자신이 지배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미성숙한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이 좋았다. 

     

    <혜화, 동>이라는 영화를 봐서 글이 더 잘 이해되었다. 나도 이 영화 속 불균형한 관계 때문에 찝찝한 기억이 남아있었다. 영화 내용은 가물한데 그 감정만 남아있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작가가 너무 잘 설명해주었다.

    "진정으로 비정한 일은,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고, 그러니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를 따지지 말자고 말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다. 지배하는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저울을 사용할 줄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데 있다."

    -----

    "멋대로 죽어버린 당신"
    - 소설 <환상의 빛>

    "이제는 슬픔이 맑게 가라앉아 있어 그것을 가벼운 힐난에 실어 말할 수도 있게 된 사람이구나"

    "그녀는 그 이후 껍데기처럼 살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는 왜 갑자기 죽어버린 것일까."

     


    "그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봐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 소설 <환상의 빛>

    어떻게 이렇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 할 책은 더더 쌓이는 걸까. <환상의 빛>도 읽어야 겠다.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타인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 허둥대는 것이다."

    이 작가의 글은 살짝 두루뭉실하다. 작가와 같은 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불만을 가지려하지만, 내가 블로그에 쓴 수많은 감상글이 더 두루뭉실한 것 같아 할 말이 없다. 게다가 나도 그 영화, 드라마, 책을 봐야지만 알 수 있게 글을 쓰는 것 같다. 그때의 감정을 써버려서 가끔은 나도 다시 읽으면 이해가 안 될때가 있다. 사실 책 이야기를 자세히 쓰고 싶지 않은 것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들고 싶어서이다. 궁금하게, 또 책을 읽어야지만 이해되게 쓰고 싶다. 작가도 비슷한 마음 아닐까? 중요한 이야기를 스포하고 싶지 않은, 모르는 체 읽어야 느낄 수 있는 그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요즘 산문집을 많이 읽었더니 주저리 주저리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지는 것 같다. 말이 점점 길어지네.

    "우리가 흔히 삶의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저 인생의 얼굴에 스치는 순간의 표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한 가족의 어느 가장이 아내에게 헌마디 말도 없이 문득 자살을 감행할 수도 있는 게 삶이라는 것을"

    ----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언젠가 내가 읽은 적 있는 삶이라는 것을."

    해밍웨이의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도 읽어봐야 겠다. 허무를 넣어서 바꾼 주기도문이 인상깊다. 

    3/4

    <슬픈 짐승>_모니카 마론

    이 소설의 내용을 요약한 것 중 재미난 부분을 내가 다시 요약해 보았다.

    그녀는 공룡 뼈대 모형을 "예배를 드리듯" 쳐다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와서 말을 건다. 그녀는 "마치 신탁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박물관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는 것을 이렇게 재미나게 표현했다. 아마 소설 속 비유일 것이다. 예배 그리고 신탁.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을 때 그녀의 삶에는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진다."

    "니는 사랑이 안으로 침입하는 것인지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인지조차도 아직 알지 못한다."
    - <슬픈 짐승>

    "우리가 특정한 순간에만 슬픈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체로 슬프기 때문이 아닌가. 인간은 본래 슬픈 짐승이고 우리는 모두 슬픔의 식민지가 아닌가."

     

    공감되는 문장이었다. 나는 요새 대체로 슬픈 감정을 안고 산다. 아무리 생각해도 슬플 일이 나한테 없는데도.


    3/7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_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이 문장이 인상깊다.

    "그 가난이 문제였다는 것을, 그런 줄을 모르는 이의 간절함은 상대방에게 오히려 잔인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사내는 바뀌지 않겠구나, 나는 이 천진함을 견디지 못하겠구나, 결국 이 사내를 미워하게 되겠구나. 그러니 그녀의 "물끄러미"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었을까."

    -------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는 예술가일 것이다. 존재의 필연성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고통과 슬픔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문학을 읽으며, 슬픈 노래를 들으며 감동받고 울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왜냐면 나도 영화, 드라마, 책 보고 우는 게 취미거든.

    ----------

    작가가 폭력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이 인상깊다. 많이 공감되기도 하고 반성되는 부분이었다.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단편적인 정보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즐거워하는 이들이 저점 많아지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트위터에 정말 많다... 나도 그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다룬 챕터에서는 <소년이 온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라 인상깊었다.

    "그러나 이런 따위의 실수를 결코 하지 않을, 아니, 할 수 없을 세월을 살아온 분들에게, 나는 죄를 지은 것이었다. 실수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작가는 2015년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이 25년이 되었다고 말했다. 35년인데 그저 실수일 뿐이다. 하지만 실수도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유 <제제>의 노래 가사가 어떠한 이유로 논란이었는지, 잘 몰랐다. 학대받은 아이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는 노래가사가 있었구나.

    "그 이중성 자체가 학대받은 아이들의 특징에요."

    "학대받은 아이들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고, 그 학생은 안다는 것."

    지금까지 우리는 피해자의 도덕성 결함을 찾아내는 기사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피해자는 착하지 않을 수도, 교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를 받은 사실이 없어지진 않는다. 생각해 보면 이중성 자체가 학대받은 아이들의 특징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그런 일을 당했는데 마냥 착하고 천사같은 모습으로만 있을 수 있을까?

    <소년이 온다>에서는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보는 것도 힘들다고 말하는 인물이 나온다. 그런데 한강 작가도 그러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본인의 이야기였구나. 또한 책에서는 진수와 함께 고문을 받던 이가 이기적인 생각도 하고 이기적인 선택도 한다. 그렇다고 그가 겪었을 고통이 없어지진 않는다. 책을 읽어 보면 그를 탓할 수 있을까?

    "이것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더 민감해져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폭력에 있어서는 더 민감해져도 불편해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3/10

    "책 전체가 시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문장들이 있다. 참혹한 비극을 다룬 문학이 아름다워도 되는가, 라는 문제는 오랫동안 이 동네의 난제였다."

    작가는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보고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문장들이 시와 같았고 참혹한 비극이지만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이런 부분이 아쉬운 것이다. 작가는 '이 동네'의 난제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이 동네'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노벨상을 주는 곳? 문학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 뭔가, 자기만 아는 언어들로 가득한 책이라 이해가 조금 어렵다.

    -----


    <패스트 라이브즈>라는 영화를 보고 오니, 이 책의 미성숙한 사랑이 떠올랐다. 45페이지에 책에서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는 권력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더 권력이 있는지 모르는 이는 미성숙한 사랑을 한다고 말한다. 이 영화가 딱 그런 미성숙한 사랑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영이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며 혜성이를 잊고 지낸다. 하지만 혜성이는 12살의 나영이를 잊지 않고 사랑해서 다시 찾는다. 거리가 먼 둘은 서로를 찾고 난 후 자주 영상통화를 한다. 그리고 나영이는 말한다. 엄마도 이제 나를 나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나를 나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이 말은 어찌보면 달콤하게 들리지만 사실 씁쓸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혜성이가 좋아하는 나영은 이제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 하면, 결말부에 로라(나영)가 이와 같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나영은 이제 없다. 그래도 존재하긴 했다. 그리고 이 둘은 영상통화를 하며 계속 서로에게 말한다. 나영은 혜성에게, 언제 나를 보러 뉴욕에 올거냐, 그러면 혜성이는 내가 뉴욕에 왜 가라고 답한다. 반대로 혜성은 나영에서 언제 나를 보러 서울에 올거냐라고 물으면 이제 나영이 내가 서울을 왜 가라고 답한다. 그런 답만 오가다 결국 나영은 네가 뉴욕에 오기 힘들다면 우리 이제 그만 연락을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결국 혜성이 나영을 찾아온다. 하지만 나영은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나영은 미성숙한 사랑을 한 것이고 혜성은 더 사랑하는 사람인 것이다.


    소년이 온다

    3/4

    "군인들이 가진 수천정의 총이 수십만의 사람들을 살해할 수 있다는 것, 더웠던 몸들이 차가워진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소회의실에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마치 자신이 스무살이 아니라 서른이나 마흔쯤 되는 사내인 것처럼 그는 말했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거였다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절의 피였다고."

    "외사촌이 죽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지 않던 그 아이는, 뭐가 먹고 싶으냐는 말에 주먹으로 눈언저리를 문지르며 대답했습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전쟁에서 진 왕이 자신의 가족이 처형당해도 울지 않다 자신의 친구가 포로가 된 것을 보고 울었다고 한다. 자신의 가족이 겪는 아픔에도 울지 않다가 친구를 보고 울었다는 것이 이런 걸까? 외사촌의 죽음을 담담히 말하다 카스테라와 사이다가 먹고 싶다고 말하며 우는 것이.

    "거대한 고통은 정체되어 있다가 이완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법이다."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31p. 벤야민의 말이 이 상황과 맞는 것 같다.


    3/7


    "맑은 술이 담긴 유리잔을 내려다보며, 마치 내가 그 속에 있어 말을 거는 것처럼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새벽에 근무를 마치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갈 때면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늦춰졌습니다. 그가 죽고 없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이 챕터는 오직 말하는 이의 말만 있다. 어떤 선생이 논문을 쓰기 위해 그에게 질문을 하고 있지만, 그의 질문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다. 그의 대답만 가득하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진수가 가지고 있던 사진은 그러니까, 동호의 사진인 것이다. 자기들이 항복을 하라고 해서 항복을 한 아이. 그것이 본인의 잘못같았겠지.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평범한 모니마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달은 밤의 눈동자라고 했다."

    "그럴듯하지 않니. 달은 밤의 눈동자래. 모임의 막내였던 당신은 어쩐지 그 말이 무서웠다."

    "세상에. 너같이 겁 많은 앤 처음 본다. 누군가 말하며 복숭아 조각을 당신의 입에 넣어주었다. 어떻게 달이 다 무섭다니."

    "그가 쓰고 있는 논문의 주제와, 심리부검의 초점으로 삼았다는 시민군의 이름을 듣고 당신은 침묵했다."

     

    시민군의 이름을 알고 있겠지. 달이 밤의 눈동자라는 말을 들은 아이는 선주겠지.


    "평소 전화를 받을 때의 습관대로 당신은 메모지를 옆에 두고, 대화에 들어 있던 10, 2, 8, 7과 같은 숫자를 또박또박 적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당신은 논문을 읽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숨기듯 원래 자리에 넣은 뒤 캐비닛을 잠갔다."


    "서서히 죽이는 것들.
    이 단체에 몸담은 십년간 당신이 다뤄온 자료들은 그런 것들에 관한 것이다."


    "윤이 가지고 있을 녹음테이프들의 세계는 다를 것이다."
    "테이프의 비좁고 반들반들한 갈색 띠를 따라 육성으로 새겨져 있을 빠른 죽음들"

    서서히 죽이는 것들, 그리고 빠른 죽음들.

     


    "당신이 꿈에 보는 광경은 이 증언자의 것과 다르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3/7

    "분명 놀이공원에서 멀어지는 길을 달렸는데 눈앞엔 어느새 뉴서울파크의 간판이 반짝였다. 붉은 하늘 위로 남색 어둠이 섞여 기묘한 보랏빛을 띠었다. 어떻게 보면 분홍색 같기도 했다. 현경은 신기루처럼 정면에 펼쳐진 뉴서울파크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 장면은 영상으로 보면 진짜 좋을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