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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독서 일기 2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뉴서울 젤리파크 대학살>, <소년이 온다>,
    독서 일기 2024. 3. 29. 13:55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3/11

    이상 작가하면 매춘밖에 생각이 안 나긴 한다. 그런데 이 책에도 매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라. 창부는 예술가의 쌍둥이라며 데카당들이 따분한 삶의 탈출구를 매춘에서 찾았다는데.. 그야, 섹스를 하면 쾌락을 느끼고 따분함이 덜 하지 않을까? 따분함을 쾌락적으로 가장 쉽게 해소한 건데.. 게다가 여자를 만나서 천천히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고 성매매를 하는 간단하고 쉬운 방법으로 해소한건데... 이게 뭔 예술인지.. 여성을 착취하면서 철학이랍시고 심미주의에 빠져 있는 게 어이가 없다..

    책 잘 읽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정말 화가 난다. 이해할 수가 없다.

    3/12

    "저는 모국어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바로 갇혀 있는 자의 생각이었군요. 세상에는 해답을 알기 전에는 문제가 뭔지조차 알 수 없는 종류의 일이 있습니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3/11

    "내부와 가까워질수록 안에서 음악 같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페스티벌이야. 그분을 환영하는 페스티벌."

    "그 경계를 넘는 순간 현경은 전에 한 번 경험한 적 있는, 푸딩으로 몸을 던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3/26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사건의 전말을 알기보다 빨리 잊기를 원했다. 그건 막역함에 대한 공포였다. 내가 발을 딛고 사는 땅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래 봤자 젤리들이었고, 그때의 사건들은 하룻밤 꿈이라고 칠 수도 있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으니까. 꿈은 깨어나면 멀어지기 마련이다. 진짜 무서운 건 그 뒤에 벌어지는 현실이지. 사준은 서둘러 지원서를 제출했다."

    "걱정 마. 나도 혼자니까."

    말하는 고양이도, 말하는 젤리도 혼자다.

    이야기가 정말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그 후의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어떤 젤리는 자아가 생겼다. 원래도 조예은 작가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지만, 이 책은 더더 모르겠다.

    젤리 위에 새겨지는 고양이 발자국 실제로 보고 싶다.

    "몸통 한가운데가 뻥 뚫린 듯 서늘했다."
    "몸통 한가운데를 괴롭히던 서늘한 감각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고양이를 생각하면 몸통 안에 몽글몽글한 기포가 차올랐다."

    고양이는 몸통 안에 서늘한 감각을 사라지게 만들더니, 이제 몽글몽글한 기포가 차오르게 만들고 있다.

    "젤리의 동그란 몸통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몽글몽글한 기포가 아닌, 큼지막한 거품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괜찮아. 전부 언젠가는 끝날 일이야."
    "고양이는 이 멋지고 슬픈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전부 언젠가는 끝난다는 슬프고도 멋있는 사실..


    "젤리는 이후로도 습관처럼 그 말을 반복했다. 말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마음이라는 줏대 없는 덩어리를 마구 주무른다.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고 한없이 연약하게 만든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꿈을 좇았다. 떠오르는 장면 속에서 놀이공원은 시끌벅적하고 흥겨웠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 종일 그 장면을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였다."

    여기서 젤리 눈에 상자로 보이는 것이, 컨테이너구나. 인간들이 숙소로 쓰는 컨테이너를 젤리는 처음봐서 상자라고 말하나보다.

    젤리가 작은 물건들을 마음에 들면 머리에 붙이곤 했다는데. 실제로 보면 귀여울 것 같다.

    뭔가 이제 사준이 새로운 빌런이 될 것 같은데??


    소년이 온다

    3/20

    "어두운 창문으로 축축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있다. 무엇인가가 길게 내쉬는 숨 같다고 문득 당신은 생각한다. 거대한 생물 같은 밤이 입을 열고 습기 찬 날숨을 뱉어낸다. 사무실 가득 밀폐돼 있던 뜨거운 공기를 캄캄한 허파 속으로 빨아들인다."

    다시 문체가 '당신은~'으로 바뀌었다. 동호의 이야기를 할 때처럼. 동호는 '너는~'이었지.


    "침묵과 헛기침과 망설임, 헐겁거나 뻑뻑한 단어들을 덧붙이고 꿰매 어떤 내용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퍼즐 맞추기를 하듯 신문에 실린 사진들을, 검열되어 텅 빈 공란들을, 격앙된 사설의 어둑한 반대편을 들여다봐야 했다."

    "부서진 전화 부스들과 불타는 파출소, 투석전을 벌이는 성난 군중. 오직 상상으로 유추해야 하는 공란 속의 문장들."

    "먼저 가신 임들을 따라 끝까지 싸웁시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귀하니까."

    "생시보다 선명한 꿈들을 기억하며 당신은 계속 걷는다."

    "한겹 꿈을 열고 나오며 당신은 자신에게 묻는다. 그러나 깨어나는 대신 다음 겹의 꿈으로 스며들어간다."

    "그 꿈까지 열고 나오면 마침내 마지막 겹의 꿈이 기다리고 있다."

    "악몽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기억들이 조용히 당신의 머리맡에서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당신은 자신에게 물은 적 있다. 모든 게 지나갔지 않은가. 당신에게 고통을 줄 가능성이 백분의 일, 천분의 일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당신 스스로 깨끗이 밀어냈지 않나."

    "이어 대답하던 성희 언니의 차분한 얼굴을 당신은 지난 십년 동안 용서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지키는 일로 남은 인생을 흘려보내진 않았을 거란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을 지키려고 한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열여섯살 난 그애는 무엇이 자신을 울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신들을 가슴에 안고 이층 노조 사무실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빈방으로 걸어 올라갔을 것이다."

    "썰물처럼 잠이 밀려나가며 고통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순간, 어떤 악몽보다 차가운 순간이 다시 왔다. 당신이 겪은 모든 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기억해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아직도 이따금, 용케 악몽 없이 잠에서 깨어나려는 순간이면 그 소리가 들려. 그때마다 난 어둠을 향해 떨리는 눈꺼풀을 열어. 누구야. 누가 오는 거야. 누가 이렇게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오는 거야."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깊이 상처 입히는 길이란 것을 알면서 다시 그녀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눈을 뜬 달이 침묵하며 옥상의 여자애들을 내려다보던 봄밤이었다."

    "내가 언니에게 등을 돌리던 순간,
    심장에 시멘트를 붓듯 언니에 대한 모든 것, 복잡하고 뜨겁고 너덜너덜한 모든 걸 단번에 틀어막으려던 순간,
    그 순간을 감쪽같이 건드리지 않고 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아침에 네가 책가방 들고 대문을 나서먼, 한없이 뒷모습을 보고 섰고잪게 옷태가 났제."

    아이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엄마는 항상 눈물이 난다.

    "이번에 내가 이름을 부르면 얼른 돌아봐라이. 대답 한자리 안해도 좋은게, 가만히 돌아봐라이."

    동호는 정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 것일까?

    "나라에서 죽인 동생 원수를 무슨 수로 갚는다냐."

    3/21

    "암것도 속에 없는 허재비 같은 손을 맞잡고, 허재비 같은 등을 서로 문지름스로 얼굴을 들여다봤다이. 얼굴 속에도 암것도 없고, 눈 속에도 암것도 없는 우리들이 내일 보자는 인사를 했다이."

    "그렇게 끝까지 같이하기로 했는디, 이듬해 느이 아부지가 병을 얻어 약속을 못 지켰어야. 겨울에 임종할 때엔 야속했다이. 이 지옥에 나만 남겨놓고 가는 것이."

    "하지만 죽은 다음의 세상을 나는 모른게. 거그서도 만나고 헤어지는지, 얼굴이 있고 목소리가 있는지, 반갑고 서러운 마음이 있는지 모른게. 느이 아부지 잃은 것을 가엾어해야 하는지, 부러워해야 하는지 어떻게 내가 알었겄냐."

    "여덟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은 싫지만 여름밤이 좋아. 암것도 아닌 그 말이 듣기 좋아서 나는 네가 시인이 될라는가, 속으로 생각했는디."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가, 꽃 핀 쪽으로."

    너무 눈물이 많이 나서 자꾸 울음을 참으면서 봤다. 멈추고 다른 일을 하다 다시 읽고.

    에필로그


    "그 뒤로 어떤 말들이 더 오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표정, 가장 끔찍한 이야기를 덮어두고 말을 이어가는 일의 어려움, 어색하게 이어지던 침묵을 기억한다. 아무리 말을 돌려도 어느새 처음의 오싹한 빈자리로 되돌아오는 대화에 나는 이상한 긴장을 느끼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왜 그 학생의 이름을 말하기 직전에는 알 수 없는 망설임이 끼어드는가?"

    "그해 추석에 친척들이 모였을 때 어른들은 목소리를 낮춰 대화했다. 마치 아이들이 감시자인 듯이. 우리 남매와 더 어린 사촌들이 못 듣도록 가만가만히."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없이 깨어졌다."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해가 질 때까지 여기 있을 것이다. 소년의 얼굴이 또렷해질 때까지. 그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안 보이는 마룻장 위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어른어른 비칠 때까지."

    "무엇을 나는 기대했던 것일까? 유난히 환하게 불이 밝혀진 그 가게 앞에서 나는 약속 상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오래 서성거렸다."

    작가가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었구나.

    "예식장의 샹들리에는 화려했다. 사람들은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가끔 이랬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라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문득 문득 계속 생각났다.

    "처음 혼자서 망월동을 찾았던 스무살의 겨울을 기억한다. 묘지 언덕의 무덤들 사이를 걸으며 나는 그를 찾고 있었다. 그때까지 성은 몰랐다. 어른들의 대화에서 엿들은 이름만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잔인하고 읽기 힘든 부분들은 하나도 적지 못했다. 하지만 블로그에 옮겨온 부분들만 읽어도 눈물이 나는 책이었다. 꼭 알아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되지만, 누군가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읽기 전으론 돌아갈 수 없는 책인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번 마음 속 어딘가가 깨지는 기분이었다.

    1장을 다 읽지 못하고 오랜시간이 흐르고 다시 읽기 시작한 건데, 다시 읽기 시작한 이후로는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읽었다. 의식적으로 멈춰야 되긴 했어. 너무 눈물이 많이 나서. 그리고 책을 읽지 않을 때도 계속 생각이 났다. 그냥 모두가, 죽은 사람도 살아난 사람도. 결국에는 1장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고 있다. 동호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주변 인물들로 옮겨가다, 다시 동호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동호가 실제로 존재한 인물이라니 너무 슬프다. 하지만 여기 나온 인물들 하나 하나 그냥 스쳐간 인물들도 실제로 존재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태극기를 덮고 누워 있던 여자들은 소설 속에 있지만, 현실에서도 있었을 것이다. 작가가 동호의 묘지를 찾아갈 때, 초를 하나만 가져가지 않고 세 개를 챙겨가 옆 묘지에도 올리지 않았는가. 죽은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많을 것이다.

    1장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고 할 것처럼. 공기 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처럼."

     

    "아직 한 방울의 비도 바람 사이로 튕겨져나오지 않았다."


    동호가 집 마당가에 피던 접시꽃을 생각하네.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살던 집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던 접시꽃들이 생각났다. 자기가 살던 집에 살았던 동호를 생각하며 쓴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읽으니 더 마음이 아프다. 이런 디테일은 다시 읽어야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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