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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 추석이라 가족 영화를 보고 왔다.영화 후기 2024. 9. 16. 00:54
요번 추석은 연휴가 길다~ 주말부터 수요일까지 시간이 아주 많다. 그래서 이 기회에 영화를 보고 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예매해놓고 조금 지각해서 앞부분을 놓치긴 했지만,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봤다. <딸에 대하여> 책을 올해 읽은 줄 알았는데 아니였구나. 작년 11월에 읽었나 보다. 추석에 보기 좋을 가족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또 이해하기 어려운 그 고통이 적나라하게 등장하는 영화이다. 책에 나오는 문장처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순서데로, 책에 대한 리뷰는 여기 있다.
https://aaaa-dlek.tistory.com/81
https://aaaa-dlek.tistory.com/82
https://aaaa-dlek.tistory.com/84
책에 좋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영화에는 다 담기지 않았다. 그럴만도 한 게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도 그것은 같지만, 그 수많은 엄마의 일기장 같은 말들을 다 영화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레이션밖에 없을 테니까. 오히려 영화는 대사가 적다. 많은 대화를 하기 보다는 주연 배우인 오민애 배우의 얼굴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래서 조금 걱정은 되는 게 영화만 보고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책까지 읽어야지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 영화는 상영관도 적고 보러 오는 사람도 적어서 대부분 책을 잘 알고 내용도 잘 아는 사람들이 오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책과 비슷하게 영화에서도 딸이 동성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빨리 밝히지 않는다. 나는 알고 봤지만 모르고 본 사람들은 눈치 채는데 오래 걸렸을 것 같다. 대사가 없어서 책에서 좋았던 말들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핵심을 가르는 말들은 다 영화에 나온다.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 하게 막고 있다고 생각 안 해?"
"이게 어떻게 남의 일이야."
특히 이게 어떻게 남의 일이냐는 말은 딸의 입에서 조금 후에는 엄마의 입에서도 나온다. 딸은 동료교사가 동성애자란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해서 시위에 나간다. 엄마는 남의 일이잖아라고 말하고, 딸은 이게 왜 남의 일이냐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데 가족도 없는 치매환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자 이게 왜 남의 일이냐고 말한다. 우리도 늙으면 충분히 저런 취급을 당할 수 있지 않냐고. 요양보호사인 엄마가 치매환자인 제희를 가족처럼 아끼가 되면서, 동성애자인 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캐릭터의 직업 설정이 아주 탁월한 이야기인데 이것 또한 영화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오민애 배우와 두 번째로 이름이 뜬 제희 역의 허진 배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오민애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은 처음본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름이 뜬 배우도 임세미 배우일 줄 알았는데 허진배우였다. 두 배우 모두 얼굴은 익숙했지만 이름을 몰랐던 것 같다. 중년의 여성 둘이 영화에서 큰 분량을 차지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서 좋았다. 영화를 보고 와서 트위터에 검색을 했는데 다들 임세미 배우와 하윤경 배우의 레즈비언 서사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이 영화는 둘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딸이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젊은 여자 배우들의 팬이거나, 어떻게든 동성애 코드가 있으면 찾아보는 여자들이 많았나 보다. 하긴 동성애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말이 듣기 싫겠지.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 중년의 여성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가족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동성애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잘 그려낸 것이다. 영화의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그냥 동성애 커플을 찾는 사실은 조금 슬펐다. 여자들도 젊은 여자만 좋아한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이 이야기는 나이듦에 대해, 늙음에 대해, 나이 먹고 혼자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영화 전반내내 그렇게 담아냈는데 말이다.
딸이 시위에 나가서 다쳐서 응급실에 갔을 때 엄마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던 장면이 있다. 영화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고 대사도 없었지만, 사실 책에서는 딸보다 더 크게 다친 동료교사의 엄마를 보면서 속으로 안도하던 장면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이기적으로 안도하는 자신을 미워하기도 하던 장면이 있다. 책에서 읽을 때 그 부분이 참 마음 아프지만, 공감이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인상깊은 장면이었는데 영화에서는 별다른 대사 없이 넘어가서 아쉬웠다. 그 부분은 꼭 책으로 다들 읽어보면 좋겠다.
책에 있는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영화화한 작품이었다. 책의 많은 내용을 조금 덜어내었을 뿐 딱히 바꾼 부분은 엇는 것 같았다. 아쉬운 부분도 조금은 있고, 책이 더 좋기는 햇지만 그래도 극장에서 보기를 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미랑 감독도 여성이고, 오민애, 허진, 임세미, 하윤경 배우까지 포스터에 쓰인 이름들이 모두 여성인 영화는 일단 극장에서 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작의 작가도 김헤진 작가로 여성이다. 긴 추석 연휴에 가족 영화를 보러 다들 극장에 가서 <딸에 대하여>를 보면 좋겠다. 피로 이어져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 가족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이야기이고, 피가 이어지지 않은 타인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중년의 어른들이 보면 좋을 영화같다.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영화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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